1474년(성종 5) 5월에 정희대왕대비(貞熹大王大妃)를 비롯하여 인수대비(仁粹大妃), 안순대비(安順大妃) 등이 주관하여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공혜왕후(恭惠王后) 한씨(韓氏)의 명복을 위해 준비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것을 내수사(內需司)의 비용을 들여 광평대군(廣平大君)의 부인 신씨(申氏)의 원당(願堂)인 견성사(見性寺)에서 간행되었던 판을 1485년(성종 16)에 다시 보각한 것이다. 당(唐) 법등(法燈)이 한역(漢譯)한 것을 저본(底本)으로 하였고,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내용과 의식을 담고 있다. 1991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현재 서울시 관악구 호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본래 세조(世祖)의 극락천도(極樂薦度)와 정희대비의 수복무궁(壽福無窮), 그리고 돌아간 아버지 광평대군(廣平大君)의 극락왕생(極樂往生)을 빌기 위해 영순군(永順君)이 필사한 것을 판각하다가 중단되었는데, 그 비용을 내수사(內需司)가 지원하여 간행하였으며, 왕후천일(王后遷日)에 돌려서 열람한 사실이 발문에 기록되어 있다.
그 뒤에 초판(初板)의 일부가 훼손되어 1485년 4월 화주(化主) 신환(信環)과 감조(監造) 도림선사(道林禪師)의 주도로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와 권상의 제24∼26장, 권중의 26장∼27장, 권하의 24장∼25장이 보각(補刻)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 대한 기록이 권상의 말미에 ‘성화이십일년사월일보간(成化二十一年四月日補刊)’ 권하의 시주질(施主帙)에 표시되어 있다.
표지는 선장 5침으로 되어 있으며, 개장하지 않고 원본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변란(邊欄)은 사주단변(四柱單邊)에 계선(界線)이 없고, 반곽 크기는 대체로 세로 23.3㎝, 가로 16.7㎝이며, 한 면은 8행 16자이다. 또한 판심은 상하내향흑어미(內向黑魚尾)를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보각(補刻)한 부분에는 판심의 상하에 대흑구(大黑口)가 더 새겨져서 보각임을 알 수 있다.
본문 중에는 한자로 표시된 약체구결(略體口訣)이 있으며, 각 권의 끝 부분에는 석음(釋音)이 수록되었다.
권말(卷末)의 시주질(施主秩)에는 대왕대비, 인수왕후, 왕대비, 주상전하를 비롯하여 신미(信眉) · 학열(學悅) · 학조(學祖) 등의 고승에 이어 대시주 영가부부인(永嘉府夫人) 신씨(申氏) 혜원(慧圓)등의 시주자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또한 감조(監造)에는 대선사(大禪師) 도림(道林), 대화주(大化主) 비구니 신환(信環), 각수에는 당대의 유명한 전녹동(全祿同), 고말손(高末孫), 전천동(全千同) 등이 참여하였다.
『지장보살본원경』은 부처님이 도리천(忉利天)에서 어머니 마야부인(摩耶夫人)을 위하여 설법한 것을 모은 것이다. 지장보살은 한 중생이라도 지옥의 고통을 받는 자를 구원해주는 보살로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근거하여 그를 대원본존(大願本尊)으로 신봉하고 있다. 또한 내용 중에는 지옥의 여러 모습이 자세히 설하여져 있고, 부모나 조상들을 지옥으로부터 천도하여 극락에 왕생하도록 하는 데 대한 공덕들이 열거되어 있다.
본서는 당대의 유명한 각수들이 새긴 내수사 출재(出財)의 왕실판(王室板)으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본문 중 한자로 된 약체 구결도 표시되어 있어 국어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