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주자혹문 ()

중용주자혹문
중용주자혹문
유교
문헌
문화재
1371년 진주목에서 개판(開板)하여 발간한 유학서. 관판본.
이칭
이칭
중용혹문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1981년 03월 18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정의
1371년 진주목에서 개판(開板)하여 발간한 유학서. 관판본.
서지적 사항

1책(69張). 목판본. 변란은 사주쌍변(四周雙邊)으로 반곽(半郭)의 크기는 20.9㎝×13.4㎝이다. 경계선[有界]이 있으며, 13행 24자, 주쌍행(註雙行)으로 되어 있다. 어미 모양은 상하향흑어미(上下向黑魚尾)로 크기는 24.9㎝×16.4㎝이다.

판심제(版心題)에는 ‘중간(中問)’으로 표기되어 있고, 말미에는 간기(刊記)가 있는데 ‘홍수[무]사년신해칠월일진주목개판(洪需[武]四年辛亥七月日晉州牧開板)’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홍수(洪需)는 홍무(洪武)와 같다. 고려 제2대왕 혜종(惠宗)의 이름이 무(武)이므로 피휘(避諱)하여 바꾸어 쓴 것으로 고려간본(高麗刊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표지는 낡아서 배접(褙接)하여 보수(補修)하였고, 인쇄상태로 보아 이 책이 고려대 소장본(보물, 1981년 지정)보다 약간 늦게 인쇄된 것으로 보인다. 1981년 3월 18일에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내용

원(元)의 학자 예사의(倪士毅)가 주자의 『중용혹문(中庸或問)』에 대한 후학들의 주석을 모아서 편집 · 간행한 책으로 원(元)나라 판본의 특징이 비교적 잘 나타나 있다. 글자새김이 정교하고 인쇄가 깨끗한 편이다.

중국 송(宋)나라 주희(朱熹)는 사서(四書)의 주석서인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註)』를 편찬하고 나서 이에 채택된 제가의 학설이 각기 달라 독자들이 혼란스럽게 여길 것을 염려하여 문제가 될 만한 내용들을 뽑아 문답체로 기술하였는데, 이를 『혹문(或問)』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 책은 그 가운데 「중용장구」에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뽑아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서술한 것으로 『사서혹문(四書或問)』 중의 하나이다.

의의와 평가

간기에 ‘홍호(洪虎; 홍호는 곧 洪武이다.) 4년(1371) 7월에 진주목에서 개판(開板)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고려시대 지방 관판본으로 서지학 연구와 경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중용주자혹문(中庸朱子或問)』
문화재청(www.cha.go.kr)
관련 미디어 (4)
집필자
옥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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