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원(元)나라 학자 예사의(倪士毅)가 주자의 『중용혹문(中庸或問)』에 대한 후학들의 주석을 모아서 편집 · 간행한 원간본(原刊本)을 바탕으로 1371년(공민왕 20)에 진주목(晉州牧)에서 목판본으로 개판(開板)하여 발간하였다. 비교적 원본(元本)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으며, 글자새김이 정교하고 인쇄가 깨끗한 편이다.
1책. 목판본. 변란은 사주쌍변(四周雙邊)으로 반곽(半郭)의 크기는 21.1㎝×13.2㎝이다. 경계선[有界]이 있으며, 13행 24자, 주쌍행(註雙行)으로 되어 있다. 어미 모양은 상하세흑구(上下細黑口), 하향흑어미(下向黑魚尾)로 크기는 29.3㎝×17.5㎝이다.
판심제(版心題)에는 ‘중간(中問)’으로 표기되어 있고, 말미에는 간기(刊記)가 있는데 ‘홍수[무]사년신해(1371)칠월일진주목개판(洪需[武]四年辛亥(1371)七月晉州牧開板)’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홍수(洪需)는 홍무(洪武)와 같다. 고려 제2대왕 혜종(惠宗)의 이름이 무(武)이므로 피휘(避諱)하여 바꾸어 쓴 것으로 고려간본(高麗刊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표지는 낡아서 배접(褙接)하여 보수(補修)하였다. 1981년 3월 18일에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같은 책이 성암고서박물관(誠庵古書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다.
중국 송나라 주희(朱熹)는 사서(四書)의 주석서로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註)』를 편찬하였다. 그 후 그는 이에 채택된 제가의 학설이 각기 달라 독자들이 혼란스럽게 여길 것을 염려하여 문제가 될 만한 내용들을 뽑아 문답체로 기술하고, 이 책의 서명을 『혹문(或問)』으로 명명하였다. 본서는 그 가운데 『중용장구(中庸章句)』에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뽑아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서술한 책으로 『사서혹문(四書或問)』 중의 하나이다.
책 끝에 ‘홍무(洪武) 4년(1371) 7월에 진주목에서 개판(開板)하였다’는 간행기록이 있는 고려시대 지방 관판본으로 고려시대의 서지학 연구와 경학(經學)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