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식영정(息影亭) 일원은 무등산 북쪽 사면에 위치한 광주호의 상류에 위치한 정자를 중심으로 하는 원림으로서, 성산(星山)의 한 자락을 이루고 있는 지형의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담양십경의 하나이며, 2009년 9월 18일에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이 지은 「식영정기(息影亭記)」에는 장자의 외영오적(畏影惡迹)에 관한 고사로부터 식영정의 이름을 짓게 된 연유를 밝히고 있다.
“옛날에 자기의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는데, 빛이 있는 곳에서는 항상 쫓아오던 그림자가 나무 그늘 아래로 달아나자 없어지는 것을 보고, 그림자를 없애는 방법은 그늘에 숨던지 빛이 없는 곳에 머무르는 수밖에 없다.”라고 한 장자의 글에서 인용하여, 임억령이 마치 그림자가 싫어 그늘에 숨는 고사의 주인공처럼 지금까지 자신의 흔적으로부터 벗어나고픈 간절한 소망에서 정자의 이름을 명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성산별곡(星山別曲)」, 「식영정 20영(詠)」 등 한시와 가사 및 단가 등을 남겨 송강 문학의 산실이 된 장소로서, ‘그림자가 쉬어 가는 정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명칭이다.
사람들은 석천 임억령,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송강 정철 등을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부르며, 그들 문학의 산실인 식영정을 사선정이라 하기도 했다.
식영정은 조선 명종 때 서하당 김성원이 그의 장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주인을 찾아 수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드나들었으며, 이들 중에서 식영정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이다.
담양지방의 정자원림은 우리나라 고전문학 발전의 기반이 된 곳이며, 식영정은 담양지방 정자원림 중에 역사 · 문화적 의미가 깊은 중요한 하나의 원림이다.
식영정은 정자의 모습이 ‘띠풀로 지붕을 하고 대발로 날개처럼 차양을 달았으니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포장을 친 놀잇배와 같다.’하여 그 모양을 배에 비유하였다고 한다.
식영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으로서, 1칸의 온돌방과 대청마루가 각각 절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식영정의 뒤로는 소나무림이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다. 누각 앞으로는 광주호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며, 그 건너로 무등산이 바라다 보인다.
무등산과 광주호 등의 자연경관은 식영정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정자와 어우러진 노송, 정자 주위의 송림, 배롱나무 등이 아름다운 경승을 자아내고 있다.
창계천에 댐을 막아 광주호가 형성되면서 식영정 주변의 지형은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광주호의 수면이 현재의 수준으로 높아지고, 새로운 길이 조성되었으며, 식영정 앞의 창계천은 수몰되어 하천이 흘러가는 예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창계천은 하천을 따라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서 여름내 붉은 꽃이 마치 꽃구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창계천의 옛이름은 배롱나무의 한자명을 따서 자미탄(紫薇灘)이라고 했다.
식영정의 아래에는 김성원의 호를 딴 서하당이라는 정자가 위치하고 있었는데, 집 자리만 남아 있던 것이 최근에 복원되었다. 식영정의 주변에는 송강 정철이 살던 지실마을이 있고, 별뫼[星山]가 있는 자미탄의 양안으로는 식영정, 환벽당, 취가정, 소쇄원 등 누정문학의 산실을 이루었던 누정이 흩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