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만경대학원과 김일성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1955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지도원을 거쳐 자강도당 책임비서, 노동당 중앙위원, 평양시당 책임비서, 제5, 6, 7, 8,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거쳐 1973년에는 정치위원회 후보위원, 1975년 정무원 부총리, 1984년 정무원 총리로 지명되었다.
강성산은 김일성의 이종사촌 동생이라는 후광(後光)을 입어 오랜 기간 동안 당 고위관료로 일하면서 명목상 내각의 최고직위인 ‘정무원 총리’직 까지 오른 북한체제의 ‘지도그룹’에 속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이런 가운데 강성산은 북한당국의 이른바 ‘곁가지파동’으로 인해 1974년 6월 평양시 당 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자아비판’을 통해 평양시 당 책임비서에서 정무원 교통위원장으로 좌천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으나, 이후인 1992년에는 정무원 총리, 2000년 6월 당 정치국 위원으로 올랐고, 2007년 사망하였다.
1970년 11월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5차 당대회에서 선출된 강성산은 이후 1973년 9월 당 중앙위원회 제5기 7차 전원회의에서 정치위원회 후보위원이 되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는 주로 조선로동당 내 조직, 사상사업에 종사해 왔으나, 1970년대부터는 경제분야로 자리를 옮겨 수송분야 전문가로서 수송능력과 수송체계를 확립하는데 주력해 왔다. 이에 힘입어 1977년에는 정무원 부총리를, 1979년에는 철도부장을 겸직하였다. 1980년 10월조선로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는 정치국 정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8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제7기 3차회의에서는 정무원 총리로 임명되었다. 이후 1986년 12월에는 동직(同職)에서 물러나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경제담당 비서로 자리를 옮겼으며, 1988년 3월에는 함경북도 당 책임비서 겸 인민위원장으로, 1990년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피선되었고, 1992년 12월에는 다시 정무원 총리로 보임되었다. 1998년 7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에서 제외됨과 동시에 같은 해 9월에는 정무원 총리직에서도 해임되었다.
강성산은 김일성훈장, 노력훈장, 국기훈장1급(1982년)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