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 미상. 『고려사(高麗史)』에 왕사(王師), 국사(國師)에 임명된 사실이 전한다. 1117년(예종 12) 1월 임자일에 왕이 법왕사(法王寺)와 신중원(神衆院)에 갔다가 명경전(明慶殿)으로 돌아와서 덕연(德緣)을 왕사(王師)로 임명하였다. 1121년(예종 16) 윤5월 정묘일에는 가뭄이 심하여 왕이 덕연을 불러 건덕전(乾德殿)에서 5일 동안 비를 빌었고, 임신일에도 다시 불러 산호정(山呼亭)에서 비를 빌었다. 인종 즉위년인 1122년 6월 국사(國師)에 임명되었다.
왕사에 임명되기 전인 1115년(예종 10)에 『홍찬법화전(弘贊法華傳)』을 교감한 일이 있다. 이 사실은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권51에 수록된 『홍찬법화전』권10의 발문에 나와 있다. 교감 당시 덕연의 지위는 승통(僧統)이었고, 홍화사(弘化寺) 주지였다. 법호는 구리(究理)·지소(智炤)·정광(淨光)·처중(處中)·후석(吼石)· 법인(法印)이었다.
「원증승통덕겸묘지명(圓證僧統德謙墓誌銘)」에 덕연(德淵)이라는 승려가 나오는데, 덕연(德緣)과 동일 인물로 보인다. 묘지명에서 ‘유가업현화사주지(瑜伽業玄化寺住持)’라고 표방한 원증승통(圓證僧統) 덕겸(德謙: 1083∼1150)을 후계자로 지목한 것으로 보아, 덕연은 덕겸의 스승 격이며 같은 유가업 승려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