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유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지병마사, 지어사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미상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지병마사|지어사대사
관련 사건
최향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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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고려 후기에, 지병마사, 지어사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 출신과 가계 등은 기록에 전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1230년(고종 17) 8월 최우(崔瑀)의 동생 최향(崔珦)이 충청도 홍주(洪州)로 귀양간 이후 지역 내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지병마사(知兵馬事)로서 병마사(兵馬使) 채송년(蔡松年)을 보필하며 군대를 이끌고 가서 난을 평정하였다. 중앙 정부군을 통솔하고 홍주 지역민을 잘 규합하여 최향 일파를 제거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해 9월 고종이 묘통사(妙通寺)에 도착할 때 말이 놀라, 국왕이 땅에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였던 왕유가 호위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견룡행수(牽龍行首)를 감옥에 가두려 했지만, 어사대부(御史大夫) 차척(車倜)이 견룡 두 사람만을 탄핵해서 파면시켰다. 또한 같은 해 11월 왕유는 팔관회(八關會)가 규례에 어긋났다는 것 때문에 일을 담당하는 하급 관리를 꾸짖었다. 차척은 왕유가 재상을 질책하였다고 오해하여 고종에게 그대로 보고하였다. 이때 왕유는 상서좌승(尙書左丞) 송순(宋恂),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 이규보(李奎報) 등과 같이 섬에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동국이상국전집(東國李相國全集)』
『고려 무인정권기 문사 연구』(황병성, 경인문화사, 2008)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고려무인정권연구』(홍승기 편, 서강대학교 출판부, 1995)
「고려무인정권기 문사의 정치활동」(김의규, 『한우근박사 정년기념 사학논총』, 지식산업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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