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지는 금마군(金馬郡). 자(字)는 호연(浩然). 고려 고종∼원종대 문한관(文翰官), 문장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아들로 이행검(李行儉)이 있다.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부성(富城) 현위(縣尉)로 임명되었다. 이후 중앙에 올라와서 도병마녹사(都兵馬錄事)가 되었으며 직사관(直史館)으로 선발되었다. 얼마 안 있어 어떤 일로 인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상서(尙書) 김창(金敞)이 이주의 재능을 사랑하여 추천하니 교서랑(校書郞)에 임명되었다. 그 후 여러 관직들을 거쳐 기거사인(起居舍人)이 되었다.
원종 때 병부·예부의 시랑(侍郞), 국자좨주(國子祭酒)를 역임하였다.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로 있다가 왕에게 글을 올려 퇴관할 것을 요청하였더니 왕이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로 벼슬을 올려 주어 치사(致仕)케 하였다. 이주는 성질이 온순하고 어질었으며 특히 글을 잘 지었고 편지 등의 글씨도 잘 썼다. 평생토록 생산(生産)에 힘쓰지 않았으므로 그 집에는 쌀 한 섬의 저축도 없었다고 한다. 1278년(충렬왕 4)에 7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