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백원 ()

언어·문자
인물
해방 이후 국립맹아학교 초대교장을 역임한 교육자. 특수교육학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8년
사망 연도
1995년
출생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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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국립맹아학교 초대교장을 역임한 교육자. 특수교육학자.
개설

호는 국운(菊雲). 서울 한남동 출신.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한 이후 경성효창공립보통학교(현재의 서울 효창초등학교)에 근무하였고, 1939년 제생원(현재의 서울농학교와 서울맹학교의 전신) 훈도로 부임하여 농(청각장애)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한글지문자를 창안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8년 10월 12일 서울 한남동에서 태어났다. 가정형편상 너무 가난하여 10살이 넘도록 학교를 다니지 못하였다가, 어머니의 기록을 보고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한강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6년 동안 학업을 마친 후 졸업하였다. 그 후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1학년까지 다니다가 학비가 들지 않는 경기도 공립사범학교로 가기 위하여 검정고시를 거쳐 본고사에 합격하였다. 1929년 경기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경성효창공립보통학교 훈도로 발령받아 10년간 일반학생들을 지도하였다.

농학생을 지도하게 된 것은 1939년 제생원(현재의 서울농학교와 서울맹학교의 전신)에 훈도로 부임하면서 시작되었다. 제생원은 조선총독부 산하 교육기관으로 맹아부와 농아부가 있었으며, 그는 처음 3년간 맹아부 훈도로 시각장애아 교육을 하였다. 그 후 농아부로 자원하여 1948년까지 농아동 교육에 헌신하였다.

1945년 해방을 맞으면서 일본인들로부터 제생원을 인수받아 교명을 국립맹아학교로 변경하였으며, 미군정청 보건후생부로부터 초대교장에 임명되었다. 1947년 11월 7일에 잠시 평교사로 근무하다가 1948년 서울 교동국민학교로 이동하였다.

1954년 3월 31일 다시 5대 교장으로 취임하였으나, 맹인과의 갈등으로 같은 해 6월 28일 3달 만에 사임하고 창경국민학교로 전보되었다. 이 후부터 일반학교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였으며, 1974년 마포초등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였다.

그는 약 10년 동안 국립맹아학교에 근무하면서 농교육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당시 일본식 수화를 한글 문법에 맞게 가르치는 것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또한 농인들이 일반인의 언어세계에 다가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당시 대구에서 올라온 이광호 학생과 같이 생활하면서 1년 동안 연구한 끝에 1946년 9월 1일 한글지문자를 창안하여 보급하였다.

그는 이 외에도 특수교육 발전을 위하여 많은 기여를 하였다. 국립맹아학교장으로 재직하면서 보건사회부 시설과에 건의하여 초등부 3년제였던 학제를 6년제로 개편하였으며, 1954년에는 농학교 교사 배출을 위하여 농아부 사범과를 신설하였다. 이 사범과에는 3년제 사범과와 1년제 보통 사범과가 있었으며, 3년 후인 1957년 우리나라 최초로 농인교사를 배출하였다.

상훈과 추모

재직하는 동안 1959년 교육공로표창(서울특별시 교육회장)과 1960년 녹조훈장(대통령), 1972년에는 교육공로표창(문교부장관)을 받았다.

서울농학교 동창회에서는 농교육과 특수교육의 발전에 공헌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개교 80주년 기념일인 1993년 4월 1일 한글지문자 창안자인 윤백원 선생의 기념비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하였으며, 동문들의 성금으로 서울농학교 교정에 1993년 10월 3일에 윤백원선생을 모시고 한글지문자 창안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참고문헌

『선희』(서울선희학교 동창회, 1993)
「지문자법(指文字法) 해설」(문병영,『침묵의 벗』제3호,1960)
「한국 청각장애교육 연구의 학사적(學史的)고찰: 1970년대 말까지」(김병하·박경란,『특수교육저널:이론과 실천』제11권 1호, 2010)
「국운 윤백원의 특수교육업적 연구」(장윤명, 단국대학교 특수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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