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유수영문루는 조선시대에 개성 유수영의 정문으로 세운 누정으로 ‘유수영문루’라고도 한다. 북한에서는 국가지정문화재보존급 제522호로 지정하고 있다.
1394년 한양(서울)으로 도읍을 옮긴 조선 왕조에서 고려 수도였던 개경을 개성으로 고쳐 부르게 하고 가장 높은 지방 행정 단위였던 유후사를 설치하였다. 그 후 1438년에 유후를 유수로 고쳤으며, 이를 전후하여 유수영의 여러 건물들을 지으면서 정문으로 세운 것이 개성유수영문루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768년에 여러 관청 건물들과 함께 고쳐지은 것이라고 한다.
개성유수영문루는 정면 3칸(8.21m), 측면 1칸(4.05m)의 2층 누정이며, 마루는 그 밑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비교적 높게 놓았다. 4각형으로 곱게 다듬은 높은 돌기둥이 다락을 듬직하게 떠받들고 있으며, 다락 위에는 흘림기둥을 세우고 두공 없이 홑처마합각지붕을 이었다. 돌기둥에는 ‘관리중진(管理重鎭)’, ‘분사고도(分司故都)’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본래 북안동에 있었으나 선죽동으로 옮겼다가 현재의 고려성균관 구내의 옛 성균관 건물과 대학 청사 사이의 아늑한 자리로 옮겨왔다.
『조선향토대백과』2(한국 평화문제연구소·조선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공동편찬, 평화문제연구소, 2006)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Ⅰ(조선유물유적도감편찬위원회 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북한문화재 자료관(north.nricp.go.kr)
북한지역정보넷(www.cyber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