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렬사터 (터)

정치·법제
유적
북한 평안남도 안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당터.
이칭
이칭
칠불사터, 칠렬사지(七烈士址), 칠열사터(七烈士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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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평안남도 안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당터.
역사적 변천

612년(영양왕 23) 수(隋)양제(煬帝)의 고구려 침입 때 살수에서 7명의 승려가 세운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안주성(安州城) 밖에 사당을 짓고 비를 세웠다. 처음에 사당은 칠불사(七佛寺)로 불렀는데, 후에 칠렬사로 개칭되었다.

내용

칠렬사는 평안남도 안주시의 서북쪽 강변에 있는 옛 사당이었다.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보면, 수군(隋軍)이 퇴각하면서 살수에 이르렀을 때 물이 깊어서 배 한 척 없이 건널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때 강변에 승려 7명이 홀연히 나타나더니 바지를 걷어 올리고 강을 건너기 시작하였다. 이 광경을 본 수군은 물이 얕은 줄 생각하고 다투어 건너다가 깊은 물에 빠져 익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군이 강을 건너가다 죽은 곳을 오도탄(誤渡灘:잘못 건너간 여울)이라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칠불사(칠렬사)를 세우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칠렬사터는 고구려가 요동반도까지 진출했던 역사적 사실을 입증해 주는 문화유산으로서 북한의 국보급 제146호로 보존·관리되고 있다.

참고문헌

『사진으로 보는 북한 국보유적』(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조선향토대백과』3·4(한국 평화문제연구소·조선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공동편찬, 평화문제연구소, 2005)
북한문화재자료관(north.nricp.go.kr)
북한지역정보넷(www.cyber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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