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나라 천주(泉州: 宋 江南, 현재의 중국 복건성 晉江專區) 출신이다. 37세 때인 970년(광종 21)에 송나라 천주의 지례사(持禮使)를 따라 고려에 와서 조정에 배알하였다. 광종은 채인범을 머무르게 하고 관고(官誥)를 내려 예빈성(禮賓省) 낭중(郎中)에 임명하고 주택 한 채와 토지·노비 등을 하사하였다.
경전과 역사에 널리 통달하고 문장을 잘 지어 임금을 보좌하였는데, 성종 때에는 상서예부시랑(尙書禮部侍郞)이 되었다. 998년(목종 1)에 65세로 사망하자 바로 그 해에 오관산(五冠山)에 장례를 지냈으며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추증되었다. 1009년(현종 즉위년)에는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추증되었다. 사후 26년이 지난 1024년(현종 15)에 개성 법운산(法雲山)의 동쪽 기슭에 개장하면서 묘지명(墓誌銘)을 만들었다.
채인범은 처음 청하군대부인 최씨(淸河郡大夫人 崔氏)와 결혼하여 아들 한 명을 낳았는데 부인은 남편보다 먼저 사망하였다. 다시 청주군군 장씨(淸州郡君 張氏)와 재혼하여 3남 2녀를 두었다. 첫 부인이 낳은 아들은 현종 때 관직이 내사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 감수국사(內史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監修國史)에 올랐는데, 현종 때의 재상인 채충순(蔡忠順)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채인범묘지명 지석은 현재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현존하는 고려 묘지명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써 역사적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