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수안(遂安: 황해도 수안군). 자(字)는 천작(天爵). 공신 삼중대광(三重大匡) 이견웅(李堅雄)의 7대손이다. 아버지는 상의봉어(尙衣奉御) 이점(李漸)이며, 어머니는 우복야(右僕射) 유자유(柳子維)의 장녀이다. 중광전직(重光殿直) 장엽후(張葉侯)의 딸과 결혼하여 2남 2녀를 낳았다.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가난하였으나, 26세 되던 1130년(인종 8)에 예부시(禮部試) 을제(乙第: 乙科)에 합격하였다. 이때 지공거(知貢擧)는 김부식(金富軾)이고 동지공거(同知貢擧)는 강후현(康候顯)이었다.
안변(安邊: 함경남도 안변군)의 수령으로 나가 군사를 거느리고 서쪽 땅을 공략할 때 공을 세웠다. 이에 대궐로 불려와 임금의 명령으로 옥당(玉堂)에 들어갔고, 경연(經筵)에 이르기까지 현관(賢關)을 역임하였다. 이후 안북통판(安北通判)으로 나갔다가 포상을 받아 정랑 겸 연고(正郞 兼 言寅誥)직을 받았다. 1151년(의종 5)에는 사관(史官)으로 왕의 시회(詩會)에 불려가 시를 짓기도 하였다.
상서호부원외랑(尙書戶部員外郞)에 이르렀으며 1162년(의종 16) 58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 이해 윤2월에 북산(北山) 기슭에서 화장하고 유해를 거둬 1163년(의종 17) 이장(移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