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원(慶源: 현재의 인천광역시). 고조는 배향공신(配享功臣) 중서령(中書令) 이자연(李子淵)이고, 아버지는 정정공(貞靖公) 이식(李軾)이다. 수태사(守大師) 문하시중(門下侍中) 최진(崔溱)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 2명을 두었다.
고려 최고 문벌 중의 하나인 경원이씨 출신으로 음서(蔭敍)를 통해 벼슬길에 나아갔다. 1144년(인종 22)에 내시(內侍)에 임명되었다. 이후 연해도 감세사(沿海道 監稅使), 합문지후(閤門祗侯), 어사대사(御史臺事), 황주목(黃州牧) 수령, 양광충청주로안찰사(楊廣忠淸州路按察使), 어사중승(御史中丞), 태자우유덕(太子右諭德) 등을 거쳤다. 1176년(명종 6)에 대중대부 지첨사부사(大中大夫 知詹事府事)에 올랐다.
이응장은 관직 생활을 하면서 2차례씩 수령 및 안찰사직을 역임하였으며, 양계(兩界)에서 군사를 거느렸고,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기도 하였다. 어사대(御史臺)와 합문(閤門)의 관직을 맡으면서, 온순하고 부지런하게 직분에 충실하였으므로 사람들의 신망을 얻었다. 1177년(명종 7) 57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개경 서쪽의 복성사(福成寺) 남산(南山) 아래에 장례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