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양(咸陽: 경상남도 함양군). 옛 이름은 박강용(朴康用)이다. 두 차례 결혼하였는데 부인은 모두 함양 출신의 오씨(吳氏)이며 향리 가문이었다. 아들은 박강수의 무반직을 계승하였다.
원래 향리(鄕吏)였으나 조부 때에 무반으로 전환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38세 되던 1152년(의종 6)에 처음 녹사(錄事)에 제수되었고, 70세 되던 1184년(명종 14)에 감문위대장군(監門衛大將軍)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 뒤 고향인 함양으로 내려가 생활하다가 1200년(신종 3년)에 8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후 당시의 고려 지배층이 개경이나 경기(京畿) 지방에 무덤을 정하던 일반적인 관례와는 달리 출신지인 함양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