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지문각(知文閣)에서 전작으로 발간되었으며, 총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1950년대에 김성한의 경향은 사회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풍자와 알레고리라는 문학적 장치, 또는 역사적 우의(寓意)로써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김성한은 1960년대에 관심의 방향을 당대의 현실에서 역사적 과거로 돌렸는데, 『이성계』는 이러한 경향의 전환점이자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주요 내용을 보면, 『이성계』는 고려 말, 조선 초라는 특정한 과거를 배경으로 하여 이성계라는 역사적 실존 인물의 삶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제1부는 동북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변방의 젊은 장수 이성계의 활약상이 그려진다. 이성계가 여러 변란을 진압하며 벌이는 전투의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는 한편, 이성계의 일상적인 삶, 곧 오랑캐 장수들과의 우정, 몽골족 여인 금란화와의 사랑 등이 부각되고 있다. ‘귀주골’로 표상되는 동북 지방이 일상, 평화, 행복 따위의 긍정적 가치를 나타낸다면, 서울은 간신배들의 모략이 들끓는 어지러운 정치적 공간으로서 대비된다.
제2부는 위화도 회군(威化島回軍)을 계기로 하여 고려 충신 최영(崔瑩)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하는 이성계의 정치적 성장을 다루고 있다. 이성계는 무능한 임금과 부패한 대신들의 타락, 그리고 끊이지 않는 고려인들의 수난사 속에서 ‘권력’의 힘을 자각하게 된다. 그에 따라 이성계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백성의 원수 갚음’이라는 두 가지 사명을 두고 고뇌한 끝에 거사를 일으키기에 이른다.
제3부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그 토대를 다지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이지만, 결국 그 자신도 이방원(李芳遠)을 위시한 아들들에 의해 양위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그는 허무함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노년의 세월을 방랑으로 보내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이성계의 정치적 몰락을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적인 의식 내지 숙명론적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
역사소설은 역사라는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데에 중점을 두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또 소설의 허구성에 초점을 두고 사실을 변환시켜 문학적 심미화를 의식하는 작품으로 대별된다.『이성계』는 전자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주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과거의 사건이나 역사적 인물을 평면적으로 서술함으로써,『이성계』는 작가의 역사의식이나 사관(史觀)이 부재한 작품이라거나, ‘사료의 나열’에 그치는 작품이라고 평가되곤 하였다. 사료에만 충실하다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각 사건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하며, 사건의 일회성은 결국 역사적 허무주의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성한은 역사의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 허망하다는 태도를 작품의 여러 장면에 투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작가는 역적 박의(朴儀)와 그의 처 현아(玄娥)의 이야기를 제1부에 프롤로그의 형식으로 삽입한다. 이 이야기는 역사에 의해 역적으로 기록된 박의가 간신배의 모함에 빠져 어쩔 수 없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즉 “역사는 영원한 미지수의 누적일 뿐 심판자는 될 수 없었다.”(제2부)는 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김성한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판단하는 일을 끊임없이 유보한다. 이러한 태도로 인하여 평단에서 역사관, 허무주의의 문제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또한 사실만을 기록하는 데 치중한 탓에 인물들의 개성적인 생명력을 드러내는 일에는 실패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1950∼1960년대 문학사의 전환점에서, 이 소설이 역사라는 매개를 통하여 현실과의 대면 의식을 간접적으로 추구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에 따르면『이성계』는 역사소설의 형식을 통해 전후 소설이 배제했던 서사성을 유지하면서 역사적 상상력의 일단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