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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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에 불하된 일본인 소유의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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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에 불하된 일본인 소유의 주택.
내용

적산은 적의 재산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적산가옥은 패망한 일인 소유의 재산 중 주택을 지칭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38선 이남을 통치한 미군정청은 「패전국 소속 재산의 동결 및 이전 제한의 건」(1945년 9월 25일 제정)과 「조선 내 일인 재산의 권리 귀속에 관한 건」(1945년 12월 6일 제정)에 의거해 남한 내 모든 일인 소유재산을 인수하였다.

동시에 미군정청은 1945년 11월 12일 신조선회사(1946년 2월 21일 신한공사로 개칭)를 설립하여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의 재산과 토지 등을 인수하였으며, 이 회사는 1948년 3월 22일 '중앙토지행정처'로 개칭되었다.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1949년 12월 9일 법률 제74호로 귀속재산법이 제정되고, 1950년 3월에 시행령이 공포되면서 1956년 9월까지 20만 7842건의 귀속재산이 처리되고 8천여 건만 남을 정도로 적산 주1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해방 당시 75만 명(일본인 제외)이었던 서울인구가 전재동포(戰災同胞)의 귀환과 월남인 그리고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로 인해 1949년 5월 137만 5838명에 달해 3만 8천여 채의 적산가옥으로는 서울의 심각한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자연히 미군정기부터 적산 불하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적산가옥의 불법 점유로 인한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각 경찰서에는 관재청이나 각 시도 적산관리처의 의뢰에 따라 불법 점유 문제를 담당하는 명도제 순경들이 배치되기도 했다.

적산가옥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으로 DH하우스가 있다. 디펜던트하우스(Dependent House)로 불린 이 주택들은 장충동, 신당동, 약수동, 청파동, 후암동 등에 위치한 군정청의 관사를 의미했지만, 일제강점기 일인 회사의 중역들이 살았던 대지 200∼500평에 건평이 100평이 넘는 호화주택들이 많았기 때문에 DH하우스는 호화주택의 대명사가 되었다.

1950년 4월 24일에 발족한 관재청은 귀속재산 처리가 완료됨에 따라 1956년 12월 31일 법률 제427호에 의해 7년 만에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적산은 적의 재산이라는 의미보다는 수탈당한 재산을 되찾았다는 의미로 재해석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일인으로부터 되찾은 적산 중 일인이 거주했던 주택인 적산가옥은 우리 주거문화와의 차이로 인해 점차 소멸되어, 현재는 일제 강점을 입증하는 네거티브헤리티지(Negative Heritage)로 일부 남아있다.

참고문헌

「불하 앞둔 귀산동태 점유권매매성행」(『동아일보』, 1950.1.19)
「비화 한 세대-귀속재산」(『경향신문』, 1977.10.17 ∼ 1978.2.1)
주석
주1

국가 또는 공공 단체의 재산을 개인에게 팔아넘기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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