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자는 경임(景任)이며 아버지는 태휘(泰彙), 어머니는 안동김씨(安東金氏)이다. 문집은 한성록(漢城錄) 33수, 영흥록(永興錄) 36수, 본궁팔경(本宮八景), 잡영(雜詠), 완산록(完山錄) 79수 외 40수, 용문록(龍門錄) 132수, 서(書), 부록(附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詩)는 벼슬살이를 갈 때마다 지은 것이다. 서울에서 지은 33수는 그 당시의 서울 풍경을 재인식하는데 충분하며 곳곳의 경치를 알 수 있는 역사적 자료가 된다.
「영흥록(永興錄)」 36수는 영흥본궁(永興本宮) 선원전(濬源殿)의 봉심 및 행사를 고찰할 수 있고, 「태조독서실(太祖讀書室)」 등 36수도 모두 역사적인 자료가 되어 영흥 선원전의 행사재현 및 관련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하겠다. 또 그곳의 명물(名物)도 시로 기록하여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후에는 전주조경묘경기전(全州肇慶廟慶基殿)으로 옮겨져서 「완산록(完山錄)」 79수를 지었으니 그 당시 완산의 풍경을 음미하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또한 완산에서 융희황재승하(隆熙皇帝升遐)를 만나 그 슬픔을 시로 읊었으며, 후에 고향으로 돌아와 유거술회(幽居述懷:외딴 곳에 살면서 마음 속에 품은 생각을 말함)하면서 현세에서 자기 심정을 아는 사람이 없음을 탄식하였다.
서(書)에는 서문(序文) 등이 있다. 「상계의변(上系疑辨)」은 고려사(高麗史)로 고증하여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