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주는 한국적인 것과 서양음악의 교류 및 접목에 힘쓴 작곡자이며, 교향곡, 협주곡, 무용조곡, 가곡, 영화음악 등 예술음악과 실용음악 전반에 걸쳐 작품을 남긴 한국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이다.
1918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하여, 1937년 경성전기학교 토목과를 마친 후 1939년부터 임동혁 선생에 작곡이론을 사사하였다. 어린 시절 민속적 가락뿐 아니라 중학교 시절부터 클래식 연주 감상이 쉽지 않았던 환경에서도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타고난 문학적 감성에 항구 도시인 통영은 그에게 풍부한 정서를 갖게 했고, 1939년 임동혁 선생과 작곡이론을 공부하며 음악가로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윽고 관현악 작곡가로서뿐 아니라 창작음악을 영화에 삽입하는 선구자로서도 성공하였다.
국악과 서양음악의 교류를 시도한 정윤주는 국악기와 양악기가 합주하는 형태의 곡을 남겼다. 「황병기 주제에 의한 가야금 협주곡」(1981)이 대표적이고, 「테너와 관현악을 위한 님의 침묵」 (1995), 「아쟁과 피아노를 위한 북문」 (1971), 「플루트와 가야금을 위한 석란」 (1992), 「첼로와 가야금을 위한 배꽃과 벌」 (1993) 등 미완성 작품을 포함하여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작곡을 하였다. 정윤주는 영화음악 작곡에서도 창작곡을 만들고 영화에 삽입함으로 괄목할 업적을 남겼다. 「연산군」, 「성춘향」 (1961), 「벙어리 삼룡이」 (1964) 등의 작품으로 대종상과 한국영화음악상, 부일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무용조곡 「까치의 죽음」, 「교향곡 제1번」, 교향시 「관세음보살」, 교향곡 제2번 「속죄」, 교성곡 「해탈」, 교향시 「태몽」 등은 특히 한국적인 체취가 물씬 풍기는 수작이라 평가받는다. 1965년부터 3년간 영필하모니관현악단 단장을 역임하였고, 1990년에는 한국작곡가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86년 충무시문화상, 1988년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