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백자 청화 흥녕부대부인 묘지 및 석함은 2001년 5월 문중 후손들이 이씨 묘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묘지석의 크기는 세로 36∼37㎝, 가로 27∼28㎝, 두께 1.5∼1.7㎝이며, 석함은 세로 72㎝, 가로 54㎝, 전체높이 48㎝이고 석함 뚜껑은 세로 52㎝, 가로 73㎝, 높이 16.5㎝이다.
이 묘지석의 주인은 세조의 장모이자 윤번의 부인인 인천이씨(1383∼1456)다. 묘지명에는 ‘흥녕부대부인묘지명(興寧府大夫人墓誌銘)’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여 ‘경태칠년병자동시월 일근지(景泰七年丙子冬十月 日謹誌)’라고 끝을 맺고 있어 1456년(세조 2)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로 13자, 세로 31∼33자씩의 글자 배열로 묘지석 가득 묘지명이 적혀있다. 묘지명의 내용은 인천이씨의 아버지와 어머니, 조부 등 가족에 대한 내용과 묘주의 성품, 혼인, 이력사항, 자녀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백자 묘지석 6매와 석함 1개로 구성되어 있다.
백자 청화 흥녕부대부인의 묘지는 총 6매로, 4매의 청화백자묘지석, 표지석과 받침석으로 사용된 2매의 백자 묘지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은 전면만 시유되었는데, 배면을 바닥으로 하여 소성하는 것과 달리 전후면 모두 유약을 시유하고 묘지석을 세워 소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대형의 묘지석 번조를 위해 특별히 고안한 방식으로 생각된다.
4매의 묘지석은 정갈한 서체로 묘지명의 기본적인 내용이 기재되었으며 뒷면에는 각각 일장(一張)에서 사장(四張)까지로 순서가 적혀있다. 일장 묘지석은 유박락과 균열이 일부 발생하였고 일부 불완전 번조로 유색이 균일치 못하다. 초기 청화안료의 특징인 청화 시문시 번짐과 뭉침 현상이 보인다. 측면에 모래받침과 뒷면 두 곳에 내화토 받침 흔적이 있으며 측면 비틀림 현상이 보인다. 2장 묘지석은 측면 모래 받침 흔적과 뒷면 내화토 받침 흔적이 보이며 일부 유약 뭉침 현상이 확인된다. 청화의 색상은 대체로 선명하지만 일부 안료 번짐 현상이 여러 군데 발견된다.3장의 묘지석은 파손 수리 흔적이 있으며 유약 균열과 흘러내린 흔적이 있고 측면 모래받침 흔적과 뒷면 내화토 받침 흔적이 보인다. 청화안료는 군청색으로 일부 번짐 현상이 보인다. 4장 묘지석은 파손 수리 흔적이 여러 군데 보이고 측면 모래받침 흔적과 뒷면 내화토 받침 흔적이 뚜렷하며, 청화 색상은 군청색으로 선명하다.
묘지의 표지석 1매는 파손되어 수리 복원하였으며 나머지는 일부분 파손 된 것을 제외하고 잘 보존되어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박물관에 위탁되어 보관중이다.
백자 청화 흥녕부대부인 묘지는 석함과 더불어 출토된 희귀한 예로 묘지의 매납 방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또한 청화백자 발생 시기를 추정하는 근거 자료로 여겨지며, 청화안료, 번조 방식에서 도자사와 서예사 연구에 새로운 접근과 이해를 촉구하는 귀중한 학문적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