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경제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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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개념
1968년 대통령 신년사에서 정신의 후진성을 제거해 물질과 정신의 균형있는 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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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68년 대통령 신년사에서 정신의 후진성을 제거해 물질과 정신의 균형있는 발전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
내용

제2차 경제개발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수출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던 시점에서 박정희는 ‘제2경제론’을 주장했다. 1967년 11월 박정희는 공화당 관계자들에게 “웬만큼 이룩되고 있는 물질면의 성장에 비해 정신적인 분야의 성장이 따르지 못해 그 사이에 커다란 갭이 있으며, 그 갭이 물량 면의 고도성장을 저해하고 근대화 작업이 결과적으로 절름발이가 될 우려가 있으니 이 문제를 검토해 보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이것이 제2경제론이 나오는 배경이 되었다. 즉 이는 정신적인 측면까지 사회적인 통제를 구축할 수 있는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1967년 11월 11일 박충훈 경제기획원 장관이 ‘제2경제’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긴 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고, 1968년 1월 15일 박정희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 작업에 있어 외형적인 것, 즉 생산, 수출, 건설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1경제라고 하고 정신적인 측면, 즉 근대화의 철학적 바탕에 대한 이해나 국민들의 올바른 마음가짐들을 통틀어 편의상 제2경제라고 불러본 것’이라고 하면서 제2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신면의 후진성을 제거하여 물질과 정신의 균형있는 발전을 꾀하고자 한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제2경제라는 것이 제1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1경제에 종속된 개념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2경제론’이 나오기 이전에 경제기획원은 이를 ‘경제운영의 기반과 여건이 되는 경제외적 조건’이라고 규정했고, 공화당의 정책연구실에서는 ‘인간의 물질적 욕구 충족을 위한 행위를 제1경제라고 편의상 부른다면 이러한 제1경제의 활동과 성장을 저해하는 비경제적 요인을 경제학적 입장에서 볼 때 제2경제 부문이 다룰 문제라고 볼 수 있다’라고 규정했지만 박정희는 이러한 두 가지 규정에 대해 모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즉 그는 ‘제2경제가 정부나 공화당의 개념규정과는 달리 제1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하는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수히 물질면의 성장을 따르지 못하는 정신면의 성장을 기함으로써 균형있는 근대화를 추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신적인 면에서의 개조를 주장한 제2경제론은 이러한 박정희의 주장을 고려했을 때, 당시까지 진행되었던 산업화를 중심으로 한 근대화론과는 달리 새로운 이데올로기적인 가치를 통한 새로운 사회체제의 형성을 의미하는 것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유신체제와 같은 사회통제체제 형성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고 평가된다.

참고문헌

「1960년대 중반 안보위기와 제2경제론」(박태균,『역사비평』7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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