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군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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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사건
1960년 국군내 하급 장교들이 상급장교들의 용퇴를 요구한 운동.
이칭
이칭
하극상사건
목차
정의
1960년 국군내 하급 장교들이 상급장교들의 용퇴를 요구한 운동.
개설

1960년 4·19 혁명 직후 이승만정권기에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한 운동이 각계각층에서 벌어졌다. 군 내부에서도 부정부패 및 과거사 청산을 빌미로 상급 장교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운동이 발생했는데, 이것이 정군운동(整軍運動)이다.

정군운동 주도세력은 진급 적체에 따른 하급 장교들을 비롯한 군부 전체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4·19 직후 이승만정권과 밀착된 중장급 이상 장성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 운동은 1960년 5월 2일 군수기지사령관 박정희 소장이 육군참모총장 송요찬 중장에게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용퇴할 것을 요구하는 편지로부터 촉발됐다.

뒤이어 5월 8일부터 육군본부에 근무하는 김종필을 비롯한 육사 8기생들의 주도 하에 육사 5∼9기 영관급 장교들이 부정선거와 부정부패에 책임지고 중장급 이상 장성들은 물러나라는 ‘연판장’을 작성하다 체포되어 군법회의에 회부된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퇴진 요구에 따라 5월 20일 송요찬 육군참모총장이 사퇴하고 최영희 참모총장이 임명됐다.

그럼에도 정군운동의 주체들은 집단행동을 전개하여 9월 10일 정군파 장교들은 국방장관을 찾아가 강력한 정군 추진을 건의하려 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충무장’에서 군사정변을 결의하였다. 이어 9월 24일 16명의 대령, 중령들이 최영희 연합참모총장을 찾아가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하극상사건’이 발생했다. 그리하여 10월 6일 최영희 중장은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정군문제를 둘러싸고 한미간의 대립이 불거졌다. 당시 맥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을 비롯한 미군 측은 상급 장교의 퇴진을 요구하는 운동이 경험 있는 상급 장교들을 잃게 하여 한국군의 지휘 통솔에 지장을 준다는 입장에서 반대했고, 반면 최경록 육군참모총장은 미군 측의 입장에 대해 ‘내정간섭’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후 정군운동을 주동한 육사 8기생들은 9월 10일 상급 장성들의 퇴진 요구에 그치지 않고, 민주당정권의 타도를 계획하는 이른바 ‘충무장 결의’를 한 이후 박정희 소장을 지도자로 추대하며 군사정변을 모의하고 실행에 옮겨 1961년 5월 16일 정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한국의 군부정치』(한용원, 대왕사, 1993)
「5·16쿠데타와 미국」(박태균,『역사비평』55, 2001)
「5·16 쿠데타의 원인과 한미관계」(홍석률,『역사학보』168, 2000)
집필자
노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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