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4월 이후 한·일 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이 진행되는 가운데 독도 영유권이 쟁점으로 부상하였다. 또한 일본 측의 순시선과 어선, 실습선 등이 독도 인근에 자주 출현함으로써 울릉도 주민들의 중요한 생계수단인 어로활동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태가 전개되었다.
일본 해안보안청은 독도에 순시선을 파견하여 1953년 5∼7월 중에 수차례 경고판을 설치하였고, 10월 23일에는 일본영토 표지를 설치하기까지 하였다. 독도의용수비대는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6·25전쟁 참전 경력이 있었던 홍순칠을 중심으로 1953년 4월 20일에 결성되었으며, 독도에 주둔하여 경비임무를 수행하였다.
독도의용수비대는 1954년 8월 중순 경까지 독도 서도에 독자적으로 주둔하였고, 8월 중순 이후 정부가 독도 동도에 경비초소와 등대를 설치하자 이에 협력하여 그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파견된 경찰병력과 함께 주둔하였다. 1954년 8월 독도에 접근한 일본 순시선을 격퇴시켰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독도 인근을 침범한 일본 순시함 3척 및 항공기와 격전을 벌여 일본군 십수명을 살상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독도를 사수하였던 독도의용수비대는 1956년 12월 30일 경찰에게 경비업무와 장비 일체를 인계하면서 공식적인 수비대 활동을 종료하였다. 다만 독도의용수비대원 가운데 9명이 울릉경찰서 경찰로 특채·임용되어 독도경비업무에 계속 임하였다.
정부는 1966년 위와 같은 독도의용수비대의 공적을 평가하여 대장 홍순칠에게 근무공로훈장을 서훈하였고, 대원 11명에게 방위포장을 수여하였다. 정부는 1996년 고인이 된 독도의용수비대장 홍순칠에게 국가보훈 삼일장을, 그 외의 대원들에게 보국훈장 광복장을 추서하였다. 이후 2005년 정부에서 「독도의용수비대 지원법」을 제정하였고, 이 법령에 의거하여 2008년에는 독도의용수비대 기념사업회가 공식 출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