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유채. 세로 53.5㎝, 가로 43.5㎝.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파란(波瀾)’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시련을 의미한다. 작품의 제목처럼 이 그림은 많은 직선과 곡선이 복잡하게 교차하면서 어수선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마치 형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어떤 구조물이 무섭게 무너져 내리는 순간을 나타낸 것 같기도 하고, 폭발이나 난파로 인해 무언가가 파괴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날카로운 직선의 움직임과 요동치는 곡선의 파장은 기계의 빠른 움직임과 요란한 소리를 연상시킨다. 매우 빠르게 화면을 쓸어내린 필치는 화면 전체에 속도감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흰색, 검은색 등 강렬한 색채의 대비는 위급하고 불안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이 작품은 당시로서는 매우 미래주의나 입체주의 등의 영향이 엿보인다.
주경은 18세이던 1923년에 이 그림을 그렸다. 이 시기는 국내에서 아직 추상화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 전이며, 고희동, 김관호, 나혜석 등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화가들이 객관적 대상 묘사에 충실한 그림들을 학생들에게 교육하던 때이다. 주경 역시 국내에서 고희동으로부터 그림을 배웠고 그로부터 2년 뒤에 이 그림을 그렸다.
「파란」은 197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한국 근대미술 60년’전에 처음으로 공개되었고, 곧이어 1974년 주경의 회고전에 소개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추상화’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1920년대 작품으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구성과 내용을 담고 있어서 몇 가지 논란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제작연대를 둘러싼 의문이다. 그림 왼쪽 아래에 영문과 한문으로 각각 서명이 되어 있고 그 사이에 제작연도가 쓰여 있으나 훼손되어 확인하기 어렵다. 또한 주경의 작품에는 시기와 상관없이 유사한 서명들이 있어서 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1923년 주경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종우에게 지도를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종우로부터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전위적인 미술운동에 대한 정보를 얻어 이 작품을 제작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주경 탄생 100주년’ 전시에서 「우주」(1929), 「그녀의 영혼」(1931), 「진상」(1932) 등 비슷한 시기에 그린 추상화의 사진 자료가 공개됨으로써 1920~30년대 주경이 추상화를 제작하였던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두 번째, 「파란」은 새로운 양식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제작한 작품에 불과한데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었다는 비판이다. 주경은 일본 유학시기에도 「생존」(1930), 「격조」(1932)와 같은 추상화를 남겼으며 귀국 후에도 추상화를 남겼다. 하지만 주경의 작품 활동은 주로 사실적 재현에 충실한 풍경화, 정물화, 여인상 등이 중심이 되었고 그에 비하여 추상화 제작은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추상화가로서 주경에 대한 평가나 「파란」에 대한 평가는 여러 이견이 엇갈리고 있다.
「파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추상화로서 의미가 있으며, 「생존」(1930), 「격조」(1932) 등과 더불어 한국근대미술사에서 1920~30년대 추상화의 전개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