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1965년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 교수가 되었다. 풍물, 탈춤 등 단순하면서도 정감있는 전통적이고 민속적인 소재를 이용하여 현대적인 조형감각과 한국적인 정서가 담겨 있는 작품 활동을 하였다.
김교만(金敎滿)은 1950년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1956년에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시절에 김교만은 서울대학교의 도안과 개설(1946)을 주도했던 이순석 교수의 디자인 작업을 돕는 한편,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공예부에 출품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였으며, 1965년부터는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의 전임교수가 되어 1994년에 정년퇴임을 하였다.
김교만은 상모 쓴 농악대의 고수나 포졸 등의 한국 전통 인물을 즐겨 표현하였으며, 단순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인물 캐릭터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구축하였다. 그의 작품은 형태를 단순화시켜 통일감을 주는 현대적인 간결함을 추구하면서도 내용면에서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친숙하게 느끼는 전통적이고 민속적인 소재를 선택하여 각광받았다. 그의 디자인은 기념우표나 명절선물세트 포장에 활용되어 일반 대중들도 그의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는 1976년 첫 번째 개인전을 포함해서 1998년 유작전까지 총 다섯 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1982년에는 유네스코 주최 노마국제전에서 특선을, 1988년에는 88서울올림픽 문화포스터로 제12회 바르샤바 국제포스터공모전에서 특선을 받는 등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 1990년대 중반 컴퓨터가 도입되자 김교만은 그동안 사용해온 인물 캐릭터를 유지하면서도 이를 과감하게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변화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결과물들을 칠순 기념전에서 선보이고자 했으나 안타깝게도 개최 직전 타계하였고, 1998년 뉴욕 전시회는 유작전이 되었다.
「86 아시안게임 문화포스터」, 「88 서울올림픽 문화포스터」, 「94 한국방문의 해 공식휘장」 등과 김포국제공항 사인보드, 한일은행, 주택은행, 중소기업은행, 한국과학기술원 로고 등의 작품이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디자이너 100인(한국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 1996)가운데 1위로 선정된 바 있으며, 동탑산업훈장, 한국 산업디자인전 대회장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