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4일에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화적연은 한탄강이 휘돌아 흐르는 곳에 형성된 깊은 연못과 그 수면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화강암 바위가 탁월한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곳이다. 수면의 면적은 1,300여㎡이고 수면 위의 높이는 13m에 달한다. 영평8경 중 제1경이자 포천 한탄강8경 중 제3경에 선정되어 있다.
이곳은 한탄강 강물이 모여 깊은 못을 이루는 곳에 산으로부터 뻗어 내려온 바위가 크게 뭉쳐 마치 볏가리를 쌓아 올린 것과 같이 생겼다는 데에서 ‘볏가리소’라고 불렸으며, 이를 한자화하면서 화적(禾積)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따라서 이 바위를 감싸고 있는 못과 함께 이 일대를 화적연이라 부르게 되었다.
바위의 형상은 달리 보면 큰 뱀이 머리를 들고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세당(朴世堂)의 『서계집(西溪集)』에서는 바위의 생김새가 거북을 닮았다 하여 구암(龜巖)이라 불렀고,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유석향(乳石鄕)으로 기록되어 있다.
철원에서 흘러 내려오는 한탄강은 포천시 영북면을 지나면서 S자 모양으로 심하게 굽이치며 흐른다. 한탄강이 곡류하는 가운데 하천의 마식작용으로 인해 바위를 깎으면서 화적연 바위가 만들어졌으며, 그 바위 앞쪽으로 커다란 못이 형성되어 있다.
못의 가장자리에서 상류쪽으로는 강물에 실려 온 흰 모래가 백사장을 이루고 있으며, 그 아래로는 자갈밭으로 이어지는 여울이 있다. 화적연은 푸른 강물과 짙은 색의 현무암 절벽, 밝은 색의 화강암 등이 조화를 이루며 비경을 만들어낸다.
한탄강은 본래 중생대에 형성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신생대의 화산활동으로 인해 북한의 평강군에 자리한 오리산[鴨山, 454m]에서 용암이 흘러와 화적연 일대까지 뒤덮었다. 이후 하천의 침식작용이 진행되면서 지금과 같은 협곡이 생겨났다.
화적연은 늙은 농부가 비 한방울 내리지 않던 3년 가뭄에 하늘을 원망하면서 이 연못가에 앉아 탄식하자 물이 뒤집히면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날 밤부터 비가 내려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을 만큼 신성시되었다.
금강산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많은 선비와 화가들이 찾았던 곳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각종 지리지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정선의 『해악전신첩(海岳傳神帖)』에도 화적연이 포함되어 있다. 정선은 이곳에 불쑥 솟은 화강암 바위를 다소 과장하여 표현하기도 했다. 최익현(崔益鉉)은 「화적연」이라는 노래에서 화강암 바위를 용에 비유하기도 하였고, 그 뒤편의 평평한 암반을 볏가리에 비유하였다.
화적연 일대는 중생대에 관입한 대보화강암을 뒤덮은 현무암층을 비롯하여, 주상절리, 화강암 암반, 상류에서 흘러와 퇴적된 자갈과 모래 등 다양한 지형적 요소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지형학적 가치가 높다.
화적연은 빼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문화·역사적 의미가 큰 곳이지만, 주변에 군부대 시설이 자리하고 있어 과거의 경관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근처에서는 구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몸돌과 망치돌 등의 유물이 발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