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비료 헌납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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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9월 22일 이병철 삼성 대표가 한국비료 밀수사건으로 인해 한국비료를 정부에 헌납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이후, 정부와 삼성 측 간에 1년여 동안 지속된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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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66년 9월 22일 이병철 삼성 대표가 한국비료 밀수사건으로 인해 한국비료를 정부에 헌납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이후, 정부와 삼성 측 간에 1년여 동안 지속된 갈등.
내용

이병철 삼성 대표는 1966년 9월 22일 오후 2시 자청한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는 동시에 본인이 대표로 있는 중앙매스콤 및 학교법인을 비롯한 모든 사업 경영에서 물러나겠다는 발표를 했다.

특히 한국비료는 자신만의 “역량으로써는 도저히 순조로운 건설을 담당할 수 없다는 것”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절감하게 됐으며, 연일연야 고민 끝에 이를 국가에 바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한국비료 관계 밀수사건을 계기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기업 및 사회활동에 대해 기본적인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이병철 대표와 정부 측 모두가 미온적이고 모호한 태도를 보여주었고 기존 약속의 번복과 진의 추궁 등이 전개되는 가운데 양자 사이의 흥정설이 회자되었는가 하면 갈등 양상까지 연출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비료 헌납의 약속 이행과 그 법률적·행정적 조치는 지연되었고 여론의 동향은 이병철 대표와 정부 측 모두에게 부정적으로 흘러갔다. 사건이 매듭지어지기까지 1년여 시간 동안의 추이 윤곽은 다음과 같았다.

장기영 경제기획원 장관은 정부가 1966년 10월 1일 아직 한국비료 헌납에 대한 제안을 정식으로 받은 적이 없고, 한국비료 밀수사건의 검찰 수사 이후 그 순수한 진의가 파악되면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장기영 장관은 10월 12일 이병철 대표를 경제기획원으로 불러 의중을 타진했는데 이 자리에서 이병철 대표는 한국비료 전체 주식 중 자신 명의의 15%, 그리고 자신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주 명의의 36%, 도합 51%만을 헌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공장건설이 완료된 1967년 4월이 지나서도 이병철 대표의 아무런 구체적 행동이 없자, 장기영 장관은 9월 5일 공문을 보내 이병철 대표에게 헌납 이행을 촉구했다. 이에 이병철 대표는 9월 30일자 회한을 통해 최초 성명 당시 기준으로 한국비료 주식 보유분 51%(회한 발송 현재 시점 기준으로는 26.2%)만을 헌납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장기영 장관은 10월 3일 그 같은 의사에 대한 거부 입장을 통고했다.

이병철 대표는 1967년 10월 10일 신임 박충훈 경제기획원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현재의 시점’ 기준으로 한국비료의 주식 보유분 51%와 한국비료의 운영권을 정부에 넘기기로 약속했다. 박충훈 장관은 “명실겸전(名實兼全)한 것으로 본다”면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고, 서한을 전달한 성상영 한국비료 사장은 이병철 대표의 입장 변화와 관련해 “압력을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참고문헌

『혁명과 우상』3(김경재, 인물과 사상사, 2009)
『한국 현대사 산책』3(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04)
『재벌과 정치』(박병윤, 한국양서, 1982)
『백상 장기영』(지동욱, 숭일문화사, 1980)
집필자
김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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