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지(崔匡之)가 1389년(창왕 1) 문과 ‘병과 제3인(丙科 第三人)’으로 급제하여 받은 문서이다. 최광지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활동한 문신으로 생몰 연도는 알 수 없다.
이 홍패는 배접(褙接)되어 있으며, 현재 남아있는 부분의 크기는 세로 62.4㎝, 가로 61.6㎝ 내외이다. 문서의 상부와 하단 부분이 훼손되어 있으나, 본문의 내용과 인문(印文)은 온전히 남아 있다.
본문은 ‘성균생원최광지병과제삼인급제자(成均生員崔匡之丙科第三人及第者)’와 ‘홍무이십이년구월일(洪武貳拾貳年玖月日)’이라는 문장이 두 줄로 기록되어 있으며, 발급연월일의 위에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의 어보(御寶)가 날인되어 있다.
‘고려국왕지인’은 명나라 태조인 홍무제가 원이 망한 뒤인 1370년(공민왕 19)에 고려 국왕에게 하사한 금인(金印)으로, 조선 개국 직후에도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