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한창수집 ()

조선시대사
문헌
1682년 일본 교토에서 조선 사신과 일본인이 나눈 시와 필담을 모아 기록한 외교서. 필담창화집.
이칭
이칭
임술사화집(壬戌使華集)
정의
1682년 일본 교토에서 조선 사신과 일본인이 나눈 시와 필담을 모아 기록한 외교서. 필담창화집.
개설

『화한창수집』은 필담창화집으로, 1682년(숙종 8) 윤지완(尹趾完)을 정사로 하는 조선통신사와 일본의 승려 39인 및 유학자가 주고받은 시와 필담을 모아 교토에서 1683년에 7권 7책으로 간행한 책이다.

편찬/발간 경위

직접 한문으로 필담할 수 있는 일본인 문사들이 등장하면서 조선인과 나눈 시와 필담을 전국적으로 수집해서 간행하는 일이 시도되었다. 1683년에 교토의 서점인 초지야[丁子屋]에서 전국적으로 필담기록을 구하여 7책으로 편찬해서 간행하였다.

서지적 사항

7권 7책으로 된 목판본이다. 사주단변에 반곽은 10행 15자에 크기는 세로 20.3㎝, 가로 14.0㎝이다. 어미는 무어미이고, 책의 크기는 세로 27.1㎝, 가로 18.0㎝이다. 간기는 “천화삼계해세(1683)정월길단정자옥원병위재행(天和三癸亥歲正月吉旦丁子屋源兵衛梓行)”이라고 되어있다. ‘조선총독부 도서관장서지인(朝鮮總督府圖書館藏書之印)’의 장서인이 있다. 조선총독부 소장 도서에서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이관되었다.

내용

이 책은 조선통신사와 일본인 39인의 필담창화를 7권에 걸쳐 기록하였다. 수권(首卷)에는 교토에서 이루어진 동복사(東福寺) 소신[祖辰], 고하쿠준[高伯順], 마쓰시타 겐린[松下見林] 등 3인과의 창화시와 에도에서의 하야시 게이호[林鷄峰], 하야시 호코[林鳳岡], 미나미 슌안[南春庵], 사카이 하쿠겐[坂井白元], 히토미 유겐[人見友元], 야마다 겐킨[山田元欽]등 6인과의 창화시, 요도[淀]에서의 쓰지하라 겐포[辻原原甫], 나가오카 산리쓰[長岡山立]와의 창화시가 실려있다.

일지일권(一之一卷)에는 오사카에서의 야마모토 도운[山本洞雲], 후쿠즈미 도유[福住道祐]의 창화시, 교토에서의 구마가이 료안[熊谷了庵], 겐레이[顯靈], 호리 모카[堀蒙窩], 구로카와 기사이[黑川義齋], 다니가와 에이겐[谷川榮元], 하시모토 에키테이[橋本益亭], 미야케 세이사이[三宅誠齋], 겐 키[顯機], 벳슈소엔[別宗祖緣], 치쿠레이[竺嶺] 등 10인과의 창화시, 에도에서의 기노시타 준안[木下順庵]의 창화시 및 필담이 실려있다.

일지이권(一之二卷)에는 오사카에서의 미야케 손우[三宅遜宇], 미야케 슈쿠신[三宅淑愼], 아사노 바이인[淺野梅隱], 후나기 긴신[舟木近信], 가노 쓰네노부[狩野常信]등 5인과의 창화시 및 필담, 교토에서의 하라다 준센[原田順宣], 기노시타 기쿠탄[木下菊潭], 아오키 도안[靑木東庵] 등 3인과의 창화시와 우 시마도[牛窓]에서의 오하라 다이조겐[小原大丈軒]과의 창화시 및 필담, 교토에서의 가 쿠인[覺印], 야나가와 소슈[柳川滄洲], 호시노 후슌[星野富春], 다무라 산조[田村三恕] 등 4인과의 창화시가 실려있다.

이지일권(二之一卷), 이지이권(二之二卷), 삼권에는 야나가와 신타쿠[柳川震澤]의 필담 및 창화시 그리고 서한이 실려있다. 사권에는 이와쿠니번 소속의 유자(儒者)인 아타자카 반세쓰사이[板坂晩節齋]가 조선 문사를 관찰한 기록, 통신사 원역의 명단, 에도에서의 창화 기록 등이 실려있다.

이들이 만난 조선통신사는 정사 윤지완, 부사 이언강(李彦綱), 종사관 박경후(朴慶後), 제술관 성완(成琬), 부사 서기 이담령(李聃齡), 자제군관 홍세태(洪世泰), 양의(良醫) 정두준(鄭斗俊), 상통사 안신휘(安愼徽) 등이다. 일본 문사와의 창화에 있어서 성완이 주로 하였고, 홍세태와 이담령이 그 다음으로 많이 상대하였다. 일본에서 오사카에서 맞이하여 에도까지 안내한 장로는 소신이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일본 전역에서 이루어진 필담창화를 수집하여 출간한 거질의 필담창화집으로 이후 필담창화집의 전형을 이루었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화한창수집(和韓唱酬集)』
『화한창수집(和韓唱酬集)』首(구지현 역주, 보고사, 2013)
「1682년 한일 문사교류 담당층의 확립과 소통의 확대」(구지현, 『열상고전연구』32, 열상고전연구회, 2010)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