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학당 ()

개신교
단체
1886년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장로교 계통 학교.
이칭
이칭
원두우학당, 야소교학당, 민노아학당, 영신학당, 경신학교
정의
1886년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장로교 계통 학교.
개설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에 의해 설립된 장로교 계통 학교이다. 처음에는 언더우드에 의해 고아원을 겸한 남자학교로 운영되다가 ‘예수교학당’, ‘민노아학당’을 거쳐 1901년부터 ‘구세학당’으로 호칭하였다. 그 후 경신학교로 발전하였다.

설립목적

1885년 내한한 언더우드 선교사는 거리의 고아들을 데려다 숙식하며 가르치는 고아학교의 설립을 구상하고 이 뜻을 한국 정부에 전하였다. 당시 한국의 상황은 고아나 극빈 아동을 위한 교육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었기 때문에 언더우드의 뜻을 받아들여 그 해 2월 주1 김윤식의 이름으로 학교 설립이 허가되었다.

연원 및 변천

언더우드는 1886년 5월 11일 서울 정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 붙어있는 건물을 이용하여 교육과정을 담은 학교로써의 고아원을 개원하였다. 이 고아원은 그 후 새문안교회 내에서 운영되었는데 초기에는 ‘원두우학당’으로 불리다가 ‘예수교학당(Jejus Doctrine School)’과 ‘민노아학당’을 거쳐 게일(James S. Gale) 교장 때 ‘구세학당’이 되었다. 구세학당은 1905년 밀러(Edward H. Miller)가 교장에 취임하면서 ‘경신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1915년에는 대학부가 설치되고, 해방 후에는 경신중 · 고등학교로 발전하였다.

기능과 역할

구세학당은 고아원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안에서 교육을 시켰다는 데에서 학교로서의 성격을 찾을 수 있다. 이후 고아원에 수용되는 아이들은 수적으로 약간 늘어갔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언더우드는 정동 자신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옥을 구입해 교실로 사용하였다. 1890년 구세학당에는 25명의 남자 아이들이 수용되어 있었는데, 한문과 영어 그리고 성경을 공부하였다. 구세학당 출신으로는 김규식(金奎植)안창호(安昌浩)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구세학당은 한국 최초의 고아원이자 남자학교로서 개신교 계통 근대식 학교의 효시라고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기독교의 역사』Ⅰ(한국기독교역사학회 편, 기독교문사, 2011)
『한국개신교사』(백락준, 연세대학교출판부, 1973)
「언더우드의 한국에서의 교육활동과 한국(인) 인식」(윤경로, 『한성사학』18, 2004)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외국과의 교섭이나 통상을 맡아보던 관아. 고종 32년(1895)에 외무아문을 고친 것으로 1906년에 없애고 그 사무를 의정부의 외사국으로 옮겼다. 우리말샘

집필자
송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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