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 전기의 문신 용촌(龍村) 곽은(郭垠, ?-?)의 묘소를 관리하고 묘제(墓祭)를 지내기 위해 선산곽씨 문중에서 세운 재실건축으로 정확한 건축연대는 알 수 없다. 재실의 남서쪽에 곽은과 부인 신씨(申氏)의 묘소가 있고, 묘역 앞에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묘갈이 있다.
곽은(郭垠)의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자는 안부(岸夫), 호는 용촌(龍村)이다. 1472(성종 3)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교검(承文院校檢)이 되었으며, 그해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81년(성종 12)에 사헌부 지평이 된 뒤 공조정랑, 첨정, 장령 등의 관직을 거쳤다. 외직으로 담양부사에 임명되었을 때에는 부역과 조세를 경감하여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런 치적을 인정받아 승지로 승진되었으나 부임 도중에 죽었다. 이에 백성들이 비통해하며 기일에 쌀을 모아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재실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一자형 건물로 남향하고 있다. 서쪽부터 부엌 1칸, 안방 2칸, 마루 1칸, 건넌방 1칸의 평면구성을 보이고 있다. 전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는데, 건넌방 앞에는 한 단 더 높게 하였다.
구조는 1고주 5량가이며, 장식이 없는 동자주와 판대공을 올렸다. 기둥 위에는 민도리 형식으로 짜올렸는데, 전면에만 원기둥을 세우고 보아지에는 쇠서를 초각하여 초익공 양식처럼 보이게 하였는데, 이는 전면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장적 수법이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형태의 기와지붕을 취하고 있다.
곽은 재실은 일반적인 충북 지역의 一자형 주거건축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전면에 다소 과장된 굵은 원기둥과 그 위에 쇠서를 초각하는 모습에서 재실건축으로서의 특징이 보이고 있으며, 같은 규모의 주거에 비해 부엌의 크기는 물론 다락, 벽장과 같은 수장공간이 비교적 작다는 특성 또한 재실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