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6년(숙종 42)에 설립되어 이만원(李萬元, 1651∼1708)의 영정을 봉안하였고, 1799년(정조 23)에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을 배향하였다. 1824년(순조 24)에 서원으로 승격하였지만 1866년(고종 3)에 훼철된 후, 복설되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소강서원에 배향된 이만원은 숙종 때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백춘(伯春)이며, 호는 이우당(二憂堂)이다. 1678년(숙종 4)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청요직을 두루 거치고 지방관으로 선정을 베풀었다. 1700년(숙종 26)에 충청도관찰사가 되었고, 공조참판·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연릉군(延陵君)에 봉하여졌다. 소상서원이 위치한 후곡리는 그의 유허지(遺墟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