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조계종 승려였던 금명보정이 고려시대의 보조지눌(1158∼1210)을 비롯해서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조계종 승려들의 전기를 편집해서 수록한 책이다. 본문에는 먼저 「보조국사전(普照國師傳)」을 시작으로 송광사 16국사의 전기가 수록되어 있고, 태고보우(太古普愚)에서 청허휴정(淸虛休靜) 및 부휴선수(浮休善修)로 이어지는 태고법통의 조선시대 계보를 포함시켰다.
또한 송광사에 주석한 나옹혜근(懶翁惠勤)과 제자인 무학자초(無學自超) 등 여말선초 불교계의 주류였던 나옹계 승려들의 전기도 채록하였다. 조선시대에 있어서는 청허휴정계를 배제하고, 부휴선수계를 중심으로 수록한 것이 본서의 특징이다.
1920년에 쓴 편자의 서문에서는 중국과 한국의 역대 승전(僧傳) 편찬의 역사를 개괄하며 근래의 성과로 범해각안(梵海覺岸)의 『동사열전(東師列傳)』을 들었다. 이어 보조지눌이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을 아울러 조계종을 창설하였음을 강조하고, 지눌 이후 조계종 유파를 이 책에서 정리했다고 편술의 동기를 밝히고 있다.
필사본으로 전라남도 순천 조계산 송광사 다송실(茶松室)에서 저술하였다. 불분권 1책이며 세로 24.1㎝, 가로 16.6㎝이다.
금명보정은 전라도 곡성(谷城)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다송(茶松)이고 호는 금명(錦溟) 또는 첨화(添華)이다. 생애의 대부분을 송광사를 비롯한 전라남도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5세에 출가하여 송광사의 금련경원(金蓮敬圓)에게 머리를 깎고 2년 후 경파(景坡)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사방을 유력하면서 당대의 종장을 찾아 교학을 배웠으며 송광사 출신인 허주덕진(虛舟德眞, 1806∼1888)을 만나 의심을 깨쳤다. 또 30세가 되면서 스승인 경원의 법을 계승하여 개당하였고, 이후 송광사는 물론 지리산, 화엄사 등에서 강설하였다.
대한제국기인 1898년(광무 2)에는 송광사의 주지를 맡았으며 이후 총 4번에 걸쳐서 주지직을 역임하게 된다. 보정은 특히 고종(高宗)이 송광사를 원당(願堂)으로 지정한 이후 고종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고종이 승하한 후에는 백일재(百日齋)를 송광사에서 거행하기도 하였다. 그는 승려로서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박애(博愛)·대동(大同)·인의(仁義) 등의 덕목과 도덕을 중시하는 전통주의자로서 시대 조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내비치기도 하였다.
일본의 식민지가 된 1910년 이후로는 후학에 대한 교육과 저술에 전념하였는데, 송광사에 ‘신학(新學)’의 학교가 세워지자 몇 년간 한문과 불교를 가르쳤고 1914년에는 송광사 보제당(普濟堂)에 강원(講院)을 설치하고 강석(講席)에 부임하였다. 총 17종에 달하는 편저를 남겼는데, 저서로는 『다송시고(茶松詩稿)』·『다송문고(茶松文稿)』·『불조찬영(佛祖讚詠)』·『정토백영(淨土百詠)』·『보살강생시천주호법록(菩薩降生時天主護法錄)』등이 있고, 편저로는 『조계고승전(曹溪高僧傳)』·『저역총보(著譯叢譜)』·『대동영선(大東詠選)』·『질의록(質疑錄)』 등이 있다. 이 중 11종이 『한국불교전서』 제12책에 수록되어 있다.
『조계고승전』은 1920년에 썼는데, 이 책에서 전통적인 태고법통설(太古法統說)을 지지하였지만, 그의 조계종 인식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그가 제기한 조계종은 종조 지눌 이외에 조선 후기 부휴계의 계보를 중시하고 있다. 조계종은 태고보우가 중국 임제종을 전래한 이래 부용영관(芙蓉靈觀) 하에 청허휴정과 부휴선수의 두 파가 존재하였다. 이 가운데 종래 정통으로서 간주되어왔던 것은 청허휴정계였다. 그러나 『조계고승전』에서는 부휴계 승려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청허계 승려는 거의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보정 자신이 부휴계에 속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둘째, 태고법통설을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송광사의 보조지눌의 유풍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모순이다. 지눌은 법통상 태고보우와 연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정은 지눌을 부휴계로 끌어들임으로서 새로운 조계종의 전통을 창출하려고 하였다. 나아가 그는 ‘조계종(曹溪宗)’이라는 종명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기도 하였다. 그의 조계종 이해는 부휴계를 정통으로 하는 계파적 인식이 강하게 드러난 것이기는 하지만, 조계종이라는 명칭 자체는 조선불교의 정통성과 주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 역사적 연원을 가진 것이었다.
금명보정은 구한말 전통적 방식으로 불교사를 이해한 마지막 세대였다. 그의 저작 속에는 ‘전통을 집성’하려는 강한 의식이 엿보인다. 그 성과가 바로 『조계고승전』이다. 비록 『조계고승전』이 부휴계를 강조하려는 편향된 계파 인식의 산물이기는 해도, 『동사열전』을 잇는 근대기 승전으로서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