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2권으로 구성되었지만 현재 전하지 않는다.
이제현(李齊賢)이 쓴 보감국사의 비문에 의하면 일연의 제자는 “수백 수천이나 되지만, 능히 굳은 것을 뚫고 깊은 것을 움켜서 묘계(妙契)가 사제간(師弟間)에 의견이 서로 부합했던 자는 오직 보감국사(寶鑑國師) 한 사람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혼구는 그의 휘(諱)이며, 자는 구을(丘乙)이다. 호는 무극노인(無極老人)이다. 어릴 적부터 탑을 만들고, 벽을 향하여 앉아 사색에 잠겼으며, 용모가 단정하고 성품이 자애로워 소미타(小彌陀)라고 불렸다. 10살 때에 무위사(無爲寺)의 천경선사(天鏡禪師)에게 출가하였다. 구산(九山)의 승과(僧科)에서 장원 급제하여 상상과(上上科)에 올랐지만 내버리고 일연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스승의 자리를 이어 강당을 열게 되자, 여러 사람을 거느릴 때는 규율 있게 하고, 불경(佛經)을 강의할 때는 하나로 그어 놓은 것같이 하였다. 충선왕(忠宣王) 즉위 후에는 그에게 양가도승통(兩街都僧統)을 제수하였다. 혼구는 침착 중후하고 말이 적으며 학문은 엿보지 않은 것이 없으며, 시와 문에 풍부한 실력을 가졌었다. 그가 죽자 왕은 부음을 듣고 슬퍼하였으며 보감국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은 묘응(妙應)이라고 명명하였다. 저술은 『어록(語錄)』을 비롯하여 『가송잡저(歌頌雜著)』 2권, 『신편수륙의문(新編水陸儀文)』 2권, 『중편염송사원(重編拈頌事苑)』 30권을 남겨 당시 불교계에 유통케 했지만 현재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