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직접 짓고 쓴 게송으로, 화산 용주사(龍珠寺)에 내린 부처의 공덕을 칭송하는 불교식 게송이다. 1796년에 그 내용을 목판본 9매와 필사본 2종으로 용주사에 하사하였다. 목판본은 왕이 지은 불교 게송인 만큼 그 내용을 기리기 위해 목판에 새기고 이를 왕실의 원당인 용주사에 하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용주사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사찰로 1790년(정조 14) 사일(獅日)을 팔도도화주(八道都化主)로 하여 952년(광종 3)에 소실된 갈양사(葛陽寺)터에 창건한 사찰이다.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의 능사(陵寺)로 창건되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정조대 왕실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불교 유물이나 왕실의 하사품들이 다수 전하고 있다. 이 「기복게(祈福偈)」 역시 그중 하나이다.
필사본은 현재 3종이 있는데, 정족산성본(鼎足山城本)‚ 오대산성본(五臺山城本)‚ 태백산성본(太白山城本)이 있다. 이 세 곳은 조선왕조의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史庫)가 있던 지역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맨 뒤의 간기(刊記)에 ‘여즉조이십년을묘중하(予卽阼二十年乙卯仲夏)’라고 되어 있어 1795년에 이 기복게가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세 본 모두 표지 서명은 ‘어제화산기복게(御製花山祈福偈)’이며‚ 크기 등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 다만 각각 책의 표지 뒷면에 소장처로 보이는 곳이 해서로 필사되어 있다. 총 31폭의 대형첩이다.
수제(首題)에는 ‘어제화산용주사 봉불기복게(御製花山龍珠寺 奉佛祈福偈)’라고 쓰여 있고 한 자 낮추어 “본사(本寺)는 현륭원(顯隆園) 재궁(齋宮)을 위해서 세운 것이다. 소자(小子)는 가만히 대해(大海) 같은 양욱(量墨)을 취해서 수미산 같은 필(筆)로써 이 팔만사천보안법문(八萬四千普眼法門)의 경의승교(經義乘敎)를 써서 삼가 게어(偈語)를 지어 삼업(三業)의 공양을 효(效)하여 보은하는 복인(福因)을 닦나이다.”라고 하였다.
‘초서분일(初序分一)’에는 무고인천(無告人天)이란 소제(小題)로서 “혜일(慧日)에 대성존(大聖尊)하니 위의(威儀)는 부사의(不思議)로다. 종을 쳐서 사방에 고하여 중(衆)을 깨우쳐 십지(十地)에 오르게 한다.”라는 것으로 소자(小字) 4폭의 해석이 있다. ‘정종분칠(正宗分七)’에는 ① 대지축인(大地縮因), ② 공양칠보(供養七寶), ③ 장엄만게(莊嚴萬偈), ④ 응운발상(應運發祥), ⑤ 복덕무량(福德無量), ⑥ 제불호우(諸佛護佑), ⑦ 보살원력(菩薩願力) 등이 있다.
‘결계분이(結偈分二)’에는 ① 정토극락(淨土極樂), ② 항사보록(恒沙寶錄) 등이 있는데 각기 다 5언4구의 게문(偈文)이 있고 그에 모두 해석이 붙어있다. 그리고 첩말(帖末)에는 ‘홍제(弘齋)’, ‘만기여가(萬機餘暇)’, ‘규장지인(奎章之印)’ 등의 날인이 있다.
정조의 「기복게」는 불교에 대한 정조의 해박한 지식과 이해가 보인다. 국왕이 짓고 그 내용을 새긴 만큼 여러 본으로 인경(印經)하였으며, 실록을 보관하는 사고(史庫)에 나누어 분장(分藏)한 만큼 그 중요성과 가치가 크다. 또한 효사상이라는 명분을 통하여 생부인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어주게 하였고, 내적으로는 사도세자의 신원(伸冤)을 통한 정조 자신의 정통성 확보를 위한 상징적인 산물일 뿐만 아니라 정조의 불교관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