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죽간(竹磵), 자는 무설(無說)이다. 나옹 혜근(懶翁惠勤)의 제자이며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의 5대 주지를 지냈다. 원나라에 들어가 학사 구양현(歐陽玄)·위소(危素) 등과 교유하였고, 원명국사(圓明國師)의 비문을 위소에게 부탁하여 짓게 하였다. 『고려국사도선전(高麗國師道詵傳)』을 저술하였고, 원나라 사람 가수(可遂)가 지은 『장승법수(藏乘法數)』의 고려 간행본에 서문을 썼다.
굉연은 당시 시승(詩僧)으로 활동하였다. 『동문선』에 시 10수가 실려 있고, 『대동시선(大東詩選)』에 2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1수는 새로운 것이다. 이색(李穡)과 긴밀하게 교유하며 시를 주고받은 자취가 이색의 『목은시고(牧隱詩藁)』에 다수 실려 있는데, 굉연의 시문을 높여 “무설산인은 스님들 중 문장가(無說山人釋翰林)”라고 일컬었다.
굉연의 시 〈자청궁에서 노닐며(遊紫淸宮)〉는 『대동시선(大東詩選)』뿐 아니라 청나라의 전겸익(錢謙益)이 편찬한 『열조시집(列朝詩集)』에도 수록되었다.
시집 『죽간집(竹磵集)』 1질이 있었으나 전하지 않고, 구양현과 위소가 쓴 서문만이 『해동문헌총록』에 수록되어 있어 시인으로서의 존재를 알 수 있다. 그 밖에 남은 흔적으로는 정도전의 『삼봉집(三峯集)』에 「무설산인극복루기 후설(無說山人克復樓記後說)」 등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