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연초주식회사(大韓煙草株式會社)는 당시 연초 소비량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외국에서 연초를 수입하는 현실을 타개하고 국가 식산(國家殖産)과 공업 진흥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자본 총액은 15만 환(圜)으로 주당 50환, 총 3000주를 발행하였다. 발기인들이 400주 이상을 담당하기로 했다. 주당 증거금으로 5환을 지불하고, 총 4회 불입할 것을 계획하여 매회 12환 50전을 불입하기로 했다. 이때 주식 대금의 영수는 광교(廣橋)에 위치한 한성은행에 위탁하였다.
창립 사무소는 중서(中署) 전동(典洞) 제2통 1호에 두었다. 창립 발기인은 북서(北署) 송현(松峴) 김종한, 중서 전동 김경수(金暻秀), 중서 수동(壽洞) 이의경(李義絅), 중서 전동 차기륜(車基倫), 북서 계동(桂洞) 이보응(李普應), 남서(南署) 독도(纛島) 김경명(金景明), 중서 수동(水洞) 이승현(李升鉉), 중서 청석동(靑石洞) 김영관(金榮觀) 등이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던 당시 한국인들에 의한 단연동맹(斷煙同盟)이 확대되던 상황에서 외국 연초에 대한 소비를 줄여 영폐(永廢)한다고 했지만 대한연초의 제품에 대해서는 백성들 스스로 흡연을 금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인천감리 김윤정(金潤晶)이 개화주의를 주장하며 한국인들의 장죽(長竹)은 엄금하면서도 외국 권련(卷煙)에 대해서는 묵허(黙許)하던 상황을 비판하며 저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