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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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에, 을유문화사에서 발행한 종합 학술 문예지 성격의 월간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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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48년에, 을유문화사에서 발행한 종합 학술 문예지 성격의 월간 잡지.
내용

1948년 9월 28일자로 창간되어 을유문화사에서 발행한 월간 종합 학술 문예 교양지이다. 을유문화사의 사장이던 민병도(閔丙燾)가 발행인으로, 편집국장이던 조풍연(趙豊衍)이 편집인으로 참여하였다. 광복 이후에 창간된 최초의 학술지로 A5판으로 발행되었으나 6·25전쟁으로 통권 13호를 끝으로 발행이 중단되었다.

잡지에 글이나 작품을 실은 사람들은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문인, 교양인들이었다. 그리고 잡지의 표지는 김용준(金瑢俊), 목차는 김기창(金基昶), 속표지 박영선(朴泳善), 각종 삽화는 조병덕(趙炳悳)·조국환(趙國煥)·이병현(李炳炫) 등 당대의 일류 화가들이 그렸다. 이를 보면 이 잡지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와 애정이 컸음을 알 수 있다.

『학풍』이 지향한 바는 창간사와 편집후기에 잘 드러나 있다. 창간사에는 학문 스스로가 외부적인 영향에 휘둘리지 않고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학문을 욕구(欲求)하는 강력한 윤리적 힘을 가질 필요가 있는데, 이와 같은 학문의 자주적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학풍』과 같은 잡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편집인인 조풍연이 쓴 편집후기에서는 과학적인 정신과 적극적인 태도를 지니고 학문을 하는 자세, 우리 민족이 세계사에서 의미 있는 존재임을 연구하고, 조선사 연구에서 깊이 있게 접근하는 태도 등은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태도로서 적합한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학풍』에는 논문뿐만 아니라 서평, 수필, 시, 소설 등의 문학 작품이 실림으로써 학술지이면서도 종합 학술 문예지의 성격을 지녔다. 또한 교양과 관련한 내용을 다수 실음으로써 종합 교양지의 성격도 아울러 지니고 있었다.

이 잡지에 실린 주요한 논문으로는 이상백(李相佰)의 「과학적 정신(科學的精神)과 적극적 태도(積極的態度)」, 이인영(李仁榮)의 「우리 민족사(民族史)의 성격(性格)」, 김기림(金起林)의 「I. A. 리챠아즈론(論)」 등이 있으며, 주요 서평으로는 홍이섭(洪以燮)의 「조선민족문화(朝鮮民族文化)의 연구(硏究)」, 장수길(張壽吉)의 「조선경제연보(朝鮮經濟年報)」 등이, 주요 수필로는 이숭녕(李崇寧)의 「나의 서재 생활(書齋生活)」, 김기창(金基昶)의 「산정(山亭)」 등이, 주요 시로는 백석(白石)의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등이, 주요 소설로는 염상섭(廉尙燮)의 〈영감가쾌(令監家儈)와 돌쇠(乭釗)〉 등이 있다.

참고문헌

『을유문화사50년사(乙酉文化社 五十年史): 1945∼1995』(을유문화사 50년사 편찬위원회 편, 을유문화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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