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자료를 보면 함경도에는 북청과 영흥 두 곳에 진정사(鎭靜寺)라는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북청의 진정사(鎭靜寺)에 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49에 "북청부(北靑府)에서 북쪽으로 20리 떨어진 평지에 있다"고 하였고, 『범우고(梵宇攷)』에서는 "지금은 폐사되었다"고 하였다. 영흥의 진정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권48에 "영흥군 대박산(大博山)에 있다"고 하였고, 『가람고(伽藍考)』에는 "태박산(泰博山)에 있는데, 부 서쪽 40리에 있다"고 하였다.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는 "옛터가 영흥군(永興郡) 의흥면(宜興面) 용남리(龍南里) 동방산(東方山) 기슭에 있다. 초석이 남아 있고 기와 조각도 산재해 있는데, 석탑이 무너져 있어 제조 형식은 분명하지 않다. 석비가 2기 있는데, 그 중 하나는 1835년에 이진화(李鎭華)가 지은 비문을 새겼다. 부근에 석불과 부도의 단편이 있다"고 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1108년(예종 3) 7월 28일에 사신을 동계(東界)에 보내 진정사에 문두루도량(文豆婁道場)을 개설하고 비사문사(毘沙門寺)에 사천왕도량(四天王道場)을 개설하여 변방의 적을 물리치기를 빌었다고 하였다. 고려시대의 동계(東界)에 영흥진이 속해 있으므로, 『고려사』 기사에 나오는 진정사는 영흥의 진정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