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의 중대(中臺) 남쪽 진여원 터 아래에 있었던 신라 하대의 사찰이자 결사도량이다. 신문왕의 태자 보천이 7세기 중반 무렵에 동생 효명(孝明)과 하서부(河西府) 지역을 유람하다가 세속을 떠날 것을 맹세하고 오대산 중대의 푸른 연꽃이 핀 곳에서 암자를 짓고 보천암이라 하였다. 그 후 보천암을 화장사(華藏寺)로 개명하고 법륜사(法輪社)를 결성토록 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원상(圓像) 비로자나삼존불상(毗盧遮那三尊佛像)과 『대장경(大藏經)』을 봉안하고 복전(福田)을 두어 낮에는 『장문장경(長門藏經)』을 읽게 하고, 밤에는 화엄신중(華嚴神衆)을 염송하게 하고 해마다 100일 동안 화엄회(華嚴會)를 열게 하였다고 전한다. 보천은 오대산의 동·서·남·북·중 각 대마다 원통사·수정사·금강사·백련사·화엄사의 5개의 신앙결사를 결성하게 하고, 또 문수갑사를 세우도록 하였다. 법륜사를 신앙결사의 본사(本社)로 삼아 각 대마다 신앙결사를 전개해 국가가 평안하고 풍요롭도록 하였다. 보천암 관련 기록은 신라 하대 국가가 주도한 신앙결사와 공동체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