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40년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川端畵学校]를 졸업하였다.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추상화가로 활동했다.
191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한백유(韓百由)이다. 1932년 중국으로 건너가 다롄[大連]의 오과회(五果會) 부설 미술연구소에서 수학하였고,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타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였다. 1944년 귀국하여 금강산 및 고성 일대에 머무르며 고성 금강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고 원산에 살던 이중섭을 만나 교유하였다.
1951년 1·4후퇴 때 월남하여 이듬해 부산에서 박고석, 이중섭, 이봉상, 손응성과 함께 기조전(其潮展)을 창립하였다. 이후 서울로 이주하여 오산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55년 홍익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1956년 김영주, 최순우, 이경성, 김중업, 정규와 함께 한국미술평론가협회를 결성하였고, 1957년에는 황염수, 유영국, 이규상, 박고석과 함께 모던아트협회를 창립하였다.
1961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뒤 타계할 때까지 파리에서 활동하였다. 한묵은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유네스코(UNESCO)의 지원으로 ‘아트리에 17 판화연구소’에서 연수를 받은 것을 계기로 판화로 창작 영역을 확장하였다. 이 무렵 프랑스, 서울, 일본, 스웨덴, 멕시코 등을 오가며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1975년 상파울루비엔날레, 1980년 카뉴국제회화제 등의 국제전에 출품하기도 하였다. 재불 한인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19821984년에는 한불 작가회 회장, 19921993년에는 한글학교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2003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되어 덕수궁관에서 회고전을 개최하였고, 2005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아틀리에를 대여받아 말년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다. 2012년 서울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2015년 프랑스 디종에서 ‘이응로&한묵―파리의 한국 현대 작가전’을 개최했다. 2016년 파리에서 103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한묵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국전쟁 중에는 종군화가로 활동하며 전쟁의 폐허, 전후의 인간상을 〈꽃과 두개골〉(1953), 〈모자〉(1954) 등의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대상을 생략·변형하면서 추상미술을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간 후 유화, 수채화, 판화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추상미술에 몰두하였다. 파리 화단의 여러 경향을 수용하여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회화와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보였다. 한묵은 1969년 인간의 달 착륙에 큰 감명을 받으면서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우주 공간을 회화로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후반부터 발표한 〈공간〉 연작은 나선형의 소용돌이로 끝없이 펼쳐지는 무한한 공간을 시각화한 것이다. 1980년대 이후에는 휴지를 이용한 콜라주 작업을 시도하였고, 1990년대 이후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민화의 도상, 먹과 같은 재료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변화를 보였다.
한묵은 현란한 색채, 회화적 공간에 대한 다양한 탐구로 독자적인 세계를 확립하였고, 한국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2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1992년 제24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
1994년 제2회 KBS 해외동포상 수상
2008년 은관문화훈장 수상
2011년 제56회 대한민국예술원상 미술부문 수상
2013년 제12회 한불문화상
2015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