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윤택 ()

목차
관련 정보
식생활
인물
인천 출신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제과 제빵 장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1년
사망 연도
1985년
출생지
인천(지금의 인천광역시)
주요 경력
대한제과기술협회장
내용 요약

공윤택은 인천 출신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제과 제빵 장인이다. 일본에 건너가 어려운 환경에서 전문점을 찾아다니며 특색 있는 기술을 배우고 8년 만에 귀국하였다. 1942년 관동군 사령부 제과부의 판임관 대우로 입대한 후 3년간 복무하고 광복을 맞이하여 귀국하였다. 종로1가에서 고려당이 창업을 하였을 때 업계에 널리 알려진 공윤택을 기용하여 제품의 종류와 생산 일체를 책임지고 생산하게 되었다. 특히 맛, 컬러, 위생을 중요시하여 기술인들이 하얀 조리복, 앞치마, 모자 등을 착용하고 일을 하게 하여 제과업계 초창기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목차
정의
인천 출신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제과 제빵 장인.
인적사항

공윤택(孔潤澤)은 1911년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1985년에 사망하였다.

주요 활동

공윤택은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기술을 배웠다. 일본 도쿄[東京] 우에노에 있는 후게쓰도[風月堂]에서 3년 동안 노력하며 기술을 습득하였다. 이후로 전문점을 다니며 특색 있는 기술을 배우며 자신의 기술에 대한 자신이 생기고 난 이후 8년 만에 고국으로 귀국하였다. 일본에서 열린 품평 대회에서 ‘카스테라’를 출품해 2등상을 받았는데 충분히 1등을 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2등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귀국 이후에는 한강통에 있는 도쿄도우[東京堂]에 입사하여 1년 동안 일하다가 지방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 주1, 주2, 주3 등을 다녔다. 1942년에 만주 사평가에 주둔하고 있는 관동군사령부(關東軍司令部) 제과부에 판임관(判任官) 대우와 책임자로 입대한 후 3년 복무 중에 광복을 맞이하였다. 이 과정에서 함께 일하던 중국인의 도움으로 전쟁 주4가 아닌 상태로 귀국을 하게 되었다.

1947년 종로1가에 문을 연 고려당은 업계에 널리 알려진 공윤택을 기용하여 제품의 종류와 생산 일체를 일임하였다. 공윤택은 보수 역시 일정액의 월급을 받지 않고 생산되는 제품량에 따라 회사와 자신이 정한 비율로 보수를 받았다.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만주 등지에서 배운 러시아 케이크와 캔디를 만들어 마루캉, 코코아롱구, 초코봉봉 등을 만들었다. 또한 고려당의 히트 주5인 파운드케이크, 사라다빵, 화과자, 슈크림빵 등은 그가 개발한 제품이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맛, 컬러, 위생을 중요하게 여겨 고급 재료를 사용해 최고의 맛을 냈고 너무 화려하지 않은 적절한 제품의 색을 유지하였으며 특히 화과자의 색을 매우 아름답게 만들었다. 공윤택은 위생에 대한 개념이 투철해 기술인들이 하얀 조리복, 앞치마, 모자 등을 착용하고 일을 하게 하여 제과업계 초창기의 기반을 확립하였다. 한국 제과계의 1세대 기술자로서 김환식과 함께 제과 제빵 기술인의 권위자로 평가되며 대한제과기술협회장을 지냈다.

참고문헌

단행본

대한제과협회, 『베이커리』 1(1994)
대한제과협회, 『베이커리』 10(1996)
조승환, 『한국 빵과자 문화사』(베이커리, 2004)
이선우, 『제과계 산책-제과업계와 함께한 애환 30년의 발자취-』(동재, 2007)

기타 자료

'국내 첫 제과공 공윤택 씨', 『경향신문』(1983.12.24.)
주석
주1

황해도 서남쪽에 있는 시. 예로부터 중국과의 교통 요충지이며, 수산물ㆍ공산물이 주로 난다. 명승지로 부용당, 신광사, 탁열정(濯熱亭), 수양산성지 따위가 있다. 황해도의 도청 소재지이다. 면적은 206.93㎢. 우리말샘

주2

평안북도 서북부에 있는 시. 만주를 경유하는 압록강 철교가 이어진 국제적 교통 요지이며, 평양 다음가는 공업 도시로 방적 공업이 발달하였다. 평안북도의 도청 소재지이다. 면적은 10.6㎢. 우리말샘

주3

평안남도 서남부에 있는 항구 도시. 농업ㆍ어업ㆍ광업ㆍ공업 생산물의 집산지이다. 제련소가 있으며 광석, 시멘트, 과실, 쌀, 밀 따위를 수출한다. 우산장(牛山莊), 보림사(寶林寺), 용강 온천 따위의 명승지가 있다. 면적은 413㎢. 북한에서는 1979년 12월 행정 구역 개편 때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평안남도에서 갈라져 나왔다. 우리말샘

주4

전시에 교전국에 의해 사로잡힌 사람. 엄밀하게 따지면 정식으로 편성된 군대의 군인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지만, 넓게는 게릴라병, 무기를 들고 투항하는 민간인, 군대와 관계를 맺고 있는 비전투원도 포함된다. 우리말샘

주5

세상에 내놓거나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은 상품. 우리말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