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에서 간고등어가 언제부터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바다가 있던 경상북도 영덕에서 안동까지 보부상들이 생선을 공급하던 조선시대부터 간고등어가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조선총독부통계연표』를 분석한 김수희에 따르면, 고등어 어획량은 1911년에 비해서 1932년에 무려 7배나 증가하였고, 고등어 어획 종사자 가운데 한국인은 1911년에는 30%, 1932년에는 13%이었고, 그 나머지는 모두 일본인이었다. 고등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증가하였다는 뜻이다.
전근대 안동 사회에서 간고등어는 고급 반찬이었다. 그러다가 20세기부터 안동 지역에서 간고등어는 비교적 흔하고 값싸고 맛있는 대표적인 생선으로 자리 잡았다. 안동은 내륙에 위치하니 싱싱한 생선을 구경하기가 어려웠고, 상인들은 내륙 깊숙한 지역에 간고등어를 공급하였다. 동해에서 잡힌 고등어가 영덕-청송-안동 임동면 채거리장-안동시로 공급되든, 남해에서 잡힌 고등어가 낙동강 수로로 왜관-안동 풍천면 구담장-다시 육로로 안동시에 공급되든 간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므로 냉동 저장법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는 간고등어가 운송과 보관에 절대적으로 유리하였다.
1970년대에 냉동 저장법이 보급되면서부터는 간고등어의 염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 후 1999년 8월에 진공팩에 넣은 ‘안동간고등어’ 생산 회사가 안동에 설립되었다. 고등어가 잡히지 않는 안동에서 간고등어가 새로운 형태의 문화 상품으로 정착될 수 있었던 배경은 여러 가지이다. 안동의 자연지리적 배경이 내륙이란 점, 다른 지역과 달리 간고등어가 의례 음식으로도 쓰이는 점, 안동을 떠난 다수의 출향인들에게 간고등어가 향수를 자극하였다는 점,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개최 이후 안동 문화의 특징적인 것을 발굴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안동간고등어가 재발견되었다 점 등이다.
진공 포장된 ‘안동간고등어’가 등장한 이후 안동 지역에서 간고등어는 비포장 간고등어와 포장 간고등어로 이원화되고, 그 성격과 의미가 달라졌다. 포장 간고등어는 외지인의 안동 문화 체험 음식, 현대적 감각의 선물과 기념품인 반면에, 여전히 어물전에 있는 비포장 간고등어는 현재 토박이 안동 사람들의 의례 음식이자 일상 음식이며, 전통 등과 같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안동간고등어를 만드는 방법은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하고 물로 씻은 뒤에 왕소금을 뱃속에 듬뿍 쳐서 2마리를 ‘한 손’씩 끼워 숙성시키는 것이다. 1999년에 진공 포장 방식으로 바뀐 안동간고등어를 만들 때부터는 염도가 더 낮아졌다. 간고등어를 조리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구이, 찜, 찌개였다. 구이는 적쇠에 고등어를 올려서 숯불에 굽는 것이다. 찜은 간고등어를 토막내서 그릇에 담아 가마솥 밥솥 안에 넣어서 익히는 것이고, 찌개는 무 같은 채소를 넣고 양념을 해서 익히는 것이다.
냉동 저장법이 일반화되기 전까지 안동 일원의 웬 만한 집에서는 손님 접대를 대비하여 간고등어를 소금 독에 저장해 두고 있었다. 소금에 절인 고등어를 간잽이 고등어, 얼간잽이 고등어라고도 불렀다. 당시에 간고등어는 대표적인 생선으로 여겨져서, 시장에 갔다가 간고등어 한 손씩 사서 들고 오는 어른들의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바닷가 딸네 집에 갔던 친정 어머니가, 딸이 차려준 밥상 위의 고등어를 먹고 “야야(이 아이야), 고등어 맛이 왜 이렇노(이렇냐)?”라고 했다는 것이다. 안동에서 평생 먹던 간고등어 맛이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