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운은 한국 전통 과학의 세계적 위상 확립과 대중적 확산에 기여한 한국 과학사 연구자, 교육자, 저술가이다. 그는 평생 한국 과학 문화재의 과학적 가치를 연구하여 기존의 근거 없는 ‘우리 과학이 최고다.’라는 국수주의적 주장이나 ‘한국의 과학이 별 것 아니다.’라는 회의주의적 견해를 극복하는 길을 열었다. 그의 연구는 MIT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어 세계 학계에 널리 알려졌으며, 그의 연구를 토대로 한 과학 유물의 국보·보물 지정은 한국인의 전통 과학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전상운(全相運, 1932~2018)은 1932년 함경도 원산(현, 북한 강원도 원산시)에서 출생하였다. 1950년 월남한 후 1952년 서울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1960년대 초중반에는 서울대 사학과에서 공부하였고, 1977년 일본 교토대학에서 한국 과학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부인 박옥선과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다.
1965년부터 성신여자대학교에서 근무하였으며, 19851989년 성신여자대학교 총장, 19921996년 성신여자대학교 이사장직을 지냈다. 19812003년 문화재위원, 19821984년 한국과학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오랫동안 문화재위원으로 있으면서 각석(刻石)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자격루(自擊漏) 그리고 혼천시계(渾天時計)가 국보로,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複刻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등 16종을 보물로 지정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전상운은 평생 한국 과학사 통사 집필에 매진하였다. 1966년에 펴낸 『한국과학기술사』는 홍이섭의 『조선과학사』(1946)에서 부족하였던 과학적 내용을 제대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4년에는 『Science and Technology in Korea: Traditional Instruments and Techniques, Massachusetts』를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교(MIT) 출판부에서 출간하였다. 1976년에는 『한국과학기술사』 개정판을, 1978년에는 그것의 일본어판을 펴냈다. 2000년에는 『한국과학사』를, 2011년에는 그것의 영문 번역서를 출간하였다. 임종 직전에는 그가 50여 년간 한국 과학사 연구를 수행하면서 느꼈던 희열과 고민을 망라한 자전 에세이인 『우리 과학문화재의 한길에 서서』를 펴냈다.
1966년에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을 받았고 1973년에 과학기술상을 받았으며, 이후 1979년에 외솔상, 2001년에 세종문화상, 2004년에는 대한민국 문화유산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