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은 질병 예방을 목적으로 인체에 투입하여 항체가 생기도록 하는 물질이다. 1880년(고종 17) 지석영이 서울에 종두을 설치하여 두창 예방을 위하여 백신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콜레라, 디프테리아 등의 백신이 한반도에서 생산되기 시작하였으며, 해방 후 미군정기를 거치며 생산 기술이 고도화되었다. 1970년대까지 국가 예방접종 사업을 위한 주요 백신은 대부분 정부 주도로 생산되었다. 1990년 세계 최초로 유행성출혈열 백신을 개발하는 등 21세기 한국의 백신 개발 및 생산 능력은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하였다.
1880년(고종 17) 지석영(池錫永)이 서울에 주1 예방을 위한 종두장(種痘場)을 설치하며 한국에서 체계적인 백신의 생산 및 보급이 시작되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甲午改革) 이후 설치된 위생국(衛生局)을 통해 백신 생산은 국가적인 사업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는 전반적인 보건 위생의 향상에 비해 낮은 비용으로 감염병을 관리할 수 있는 백신을 주요한 질병 관리 정책의 도구로 삼았으며, 이를 위해 총독부 의원 및 위생 시험실에서 콜레라, 광견병, 티푸스 등의 백신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 또한 주요 가축 감염병 관리를 위한 주7가 1911년 부산에 설립되어 주10, 우역, 광견병 백신 등을 생산하였다.
해방 후 미군정기에 백신 개발 및 생산과 관련된 업무는 조선방역연구소를 중심으로 수행되었다. 1946년 전국에서 발생한 콜레라 예방을 위해 한 해 동안 약 1,890만 명분의 백신이 생산되었다. 이후 조선방역연구소는 1960년 국립방역연구소(현 질병관리청)로 전환하여 주요 감염병 관리를 위한 18종의 백신을 자체 생산, 검정, 보급하였다. 1954년 전염병예방법 제정 이후 국가사업으로서 정기 예방접종이 시행되었고, 1964년에는 백신의 효과 및 품질 관리를 위하여 생물학적 제제의 검정 및 취급 기준이 처음으로 공표되었다. 1970년대 후반까지 국가 예방접종 사업을 위한 백신은 대부분 정부 기관을 통해 생산되었다.
종래 백신은 주로 인체의 주2를 자극하여 해당 물질을 인식하고 파괴할 수 있도록 사멸된 미생물, 독소, 표면 단백질을 이용하여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주4하거나 비활성화시킨 주8, 혹은 사멸한 유기체를 사용하는 주9으로 구분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감염 환자에서 채취한 미생물을 배양하여 열처리 후 사멸시키는 방식으로 비교적 단순하게 제조되었으나, 해방 후 미군정을 통해 새로운 실험 및 생산 기구가 도입되며 백신 생산 기술이 점차 고도화되었다. 21세기에 들어 생명공학(生命工學)의 발전으로 DNA 혹은 RNA를 인체 세포에 직접 삽입, 발현시켜 면역계를 자극할 수 있는 단백질을 인체가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종류의 백신도 개발되었다.
1970년대 한국 제약산업의 빠른 성장으로 국가 예방 접종 사업에 필요한 다수의 백신이 민간 기업을 통해 생산되기 시작하였다. 백신 개발 기술 역시 진일보하여 1983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B형간염 백신(헤파박스-B) 자체 제조 기술을 확보하였으며, 1990년 세계 최초로 유행성출혈열 백신인 한타박스가 개발되었다. 1997년에는 세계보건기구 산하의 국제백신연구소(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가 한국에 설치되었다. 이는 한국 최초로 유치된 국제기구의 세계 본부로, 빈곤국을 위한 백신 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2022년 기준 국내 백신 제조기업은 총 11개 사(社)에 달하며, 약 20종의 백신이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국가 예방접종에 사용되는 18종의 백신 중 7종(B형간염, 파상풍-디프테리아, B형 인플루엔자균, 수두, 인플루엔자, 신증후군출혈열, 장티푸스)만이 순수 국내에서 제조되고 있으며, 나머지는 원료를 수입하여 완제품을 제조하거나 전량 수입하고 있다. 특히 2009년 신종플루, 2020년 코로나-19 등 전세계적인 감염병 대유행의 상황에서 백신을 조기에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며, 정부는 2010년 ‘백신 주권 확보의 해’를 지정한 이후 자체적인 백신 생산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