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창(李建昌)
이건창은 개항기 한성부소윤, 안핵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학자이다.
1852년(철종 3)에 태어나 1898년(고종 35)에 사망했다. 5세에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고 불렀는데 15세에 문과로 급제하였다. 강위·김택영·황현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1890년 외국인이 소유권 보호를 명목으로 일으킬 문제를 예견하여 외국인에게 부동산을 매매하지 못하는 금지령을 실시해야 한다고 상소하였다. 암행어사와 안핵사로 부임하였을 때 선정을 베풀어 신정비가 각처에 세워졌다. 갑오경장 이후로는 새로운 관제에 의해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거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