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규(姜晉奎)
조선 후기에, 성균관박사, 사헌부장령,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영남만인소」를 지어 사학을 몰아낼 것을 주장하며 개화정책을 반대하다가 유배된 문신. #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진오(晉五), 호는 역암(櫟庵). 경상북도 봉화출생. 아버지는 강필응(姜必應)이다. 이황(李滉)을 사숙하였다.
# 생애 및 활동사항
1845년(헌종 11)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 박사와 전적(典籍)을 지냈고, 1864년(고종 1) 사헌부 장령을 거쳐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특히 그는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시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