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전(禹性傳)
1568년(선조 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예문관검열·봉교(奉敎), 수찬(修撰) 등을 거쳐 1576년 수원현감으로 나가서는 명망이 높았다. 한때 파직되었다가 다시 장령(掌令)·사옹원정을 거쳐 1583년에 응교(應敎)가 되고, 뒤에 여러번 사인(舍人)을 지냈다. 동서분당 때 동인으로 분류되었다. 그 뒤 이발(李潑)과 틈이 생기자 우성전은 남산에 살아서 남인, 이발은 북악(北岳)에 살아서 북인으로 분당되었다. 남인의 거두로 앞장을 섰으며, 동서분당 때나 남북의 파쟁에 말려 미움도 사고 화를 당하기도 하였다. 1591년 1591년 서인인 정철(鄭澈)의 당(黨)이라 하여 북인에게 배척되고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풀려나와 경기도에서 의병을 모집해 군호(軍號)를 ‘추의군(秋義軍)’이라 하고, 소금과 식량을 조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