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하(鄭圭夏)
병인박해로 온 가족이 피신생활을 하다가 그가 15세 무렵 충청북도 충주 부근의 소탱이에 정착하였다. 그 뒤 블랑(Blanc,J.M.G., 白圭三) 주교에 의하여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명동성당의 글방에서 공부한 뒤, 한기근(韓基根) 등과 함께 신부가 되기 위하여 1884년 말레이시아의 페낭신학교에 유학하였다. 그러나 기후와 풍토를 이기지 못하고 1891년 귀국하여 새로 설립된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지금의 가톨릭대학 신학부의 전신)에 입학하였다. 1896년뮈텔(Mutel,G.C.M., 閔德孝) 주교에 의하여 사제로 서품되었다. 신부가 된 뒤 죽을 때까지 47년간을 강원도 횡성의 풍수원본당(豐水院本堂)에서만 활동하였다. 풍수원본당은 강원도 최초의 성당으로, 1866년 병인양요, 1871년의 신미양요로 정부의 천주교 탄압이 극심해지자, 사방에서 피신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