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이때 중앙위원은 지청천(池靑天)·최동오·유동열(柳東說)·이광제(李光濟)·박창세(朴昌世)·양기탁(梁起鐸)·현익철·김학규(金學奎)·이운환(李雲煥)·강창제(姜昌濟) 등이었다. 그 해 8월김구(金九)의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이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구성할 때 이 연합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 당은 비록 ‘연아용공(聯俄容共)’을 주장하고 한국국민당과 함께 단일 정당을 추구하였으나 시종 전통 있는 이론을 수립하지는 못하였다. 특히 당내에 청년이 극히 소수이고 대부분 중년 간부로 구성되어 있어 적극적인 활동을 보이지 못했다. 또한 조선민족혁명당에서 이탈한 뒤에는 재정이 궁핍하여 한국국민당으로부터 매월 수백 원씩 받아 유지한 점으로 미루어, 경제적으로는 이미 한국국민당에 부속된 상태였다.